[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청사진은 거창했다. 한국형 축구. 지난해 6월이었다. 홍명보 감독(45)이 월드컵 본선을 겨냥해 제시한 구상이다. 짧은 패스로 무장한 스페인, 힘과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하는 독일 등 특색 있는 강팀들과는 차별화를 선언했다. 대표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로 세계와 맞서겠다는 복안이다. 키워드는 공간과 압박이다. 공수 간격을 좁혀 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공을 빼앗기더라도 곧바로 수비로 전환할 수 있는 유기적인 움직임이 핵심이다. 기대가 컸다. 나이는 적어도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있어 기량에서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산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표팀은 1차전 상대인 러시아보다 많이 움직이고 공격적으로 임했다. 총 113.814㎞를 뛰어 108.136㎞에 그친 상대를 압도했다. 정확도는 떨어졌으나 슈팅도 열여섯 개를 시도했다. 반면 점유율은 48-52로 뒤졌고, 패스성공률도 75-77%로 열세였다. 열심히 달렸으나 실리적이지 않았던 셈이다. 사활을 걸고 준비했던 경기지만 무승부로 소득은 절반만 얻었다. 알제리와의 경기는 이보다 못했다. 점유율만 53-47로 앞섰을 뿐 내용 면에서 열세였다. 움직인 거리도 총 112.907㎞로 113.826㎞를 뛴 상대에 뒤졌다. 상대 공격수의 빠른 발과 개인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코칭스태프의 전략 싸움도 상대에게 허를 찔렸다. 벼랑으로 몰린 선수들의 각오에는 정신력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근호(29ㆍ상주)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최대한 집중해 정신적으로 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김신욱(26·울산)도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정신력은 기량과 전략의 한계를 미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준비 단계에서 불거진 잡음과 선수 선발 논란에 대해 "결과로 평가 받겠다"던 패기는 보이지 않는다. 2002년 4강을 추억하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현 대표팀 주축 멤버들을 흔히 '황금세대‘라고 부른다. 16년 전 붕대를 감고 몸을 날리던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다시 거론하는 현실은 기량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형 축구란 결국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해온 자화상을 함축하는 단어로 귀결되고 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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