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 브라질에서 열리는 월드컵. 개최지로서 이렇듯 완벽한 데가 있을까. 아마 삼바 축제의 열기를 생각한다면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광란이 벌어지고 있을 법하다. 그런데 막상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전해지는 바로는 광란은커녕 월드컵을 홍보하는 현수막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차분함인지 냉담인지 모르겠지만 그걸 넘어서 반대운동까지 거세다고 한다. 브라질 국민들이 월드컵을 반대한다니, 왜? 월드컵 준비에 들어간 예산 규모 속에 그 답이 있다. 이번 월드컵 개최에 투입된 돈은 약 13조원. 전 대회 때의 3조7800억원보다 3.5배나 된다. 이렇게 비용이 급증한 것은 브라질 정치권과 건설업자들 간의 정경유착 때문이었다. 브라질 국민들은 이 같은 부정부패에 분노했다. 나아가 월드컵을 유치할 돈으로 보건, 교육, 주거환경의 개선에 투입해 국민대중의 삶의 질을 높였어야 한다고 규탄하고 있다는 것이다.브라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스포츠의 세계가 얼마나 '불순하게' 오염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카타르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놓고 피파 회장단이 얽힌 추문에서도 악취가 진동한다. 스포츠를 둘러싼 이 같은 갈등과 시비는 스포츠를 결코 '순수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음을, 월드컵을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거친 숨소리로만 즐길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한국인들이야말로 그런 복잡한 심사와 싸워야 했던 이들이다. 예컨대 지난 5공화국 시절 많은 이들이 서울올림픽 때 '애국심'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와 코모두스가 검투사 경기로 시민들의 환심을 샀듯이 정권에 의해 '서커스'로 제공된 프로야구를 맘 놓고 좋아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런 갈등은 대체로 옛 기억이 된 듯싶다. 그래서 경기를 경기 자체로 즐길 수 있게 된 듯하다. 이제 며칠 전까지 선거 유세가 펼쳐졌던 거리는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열기와 흥분으로 뒤덮일 것이다. '순수한' 스포츠 행사에는 무제한의 결사의 자유를 허용하는 정부의 '배려'로 광장에 모인 이들은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칠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아직 침몰한 세월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지금, 사람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대한 환호일까, 참담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회한일까. 공이 둥근 것처럼 광장에서 펼쳐질 일들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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