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93분'

침몰해가는 세월호 안에서 자리를 지키라는 어른들의 말대로 어린 학생들이 구조의 손길이 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렸던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배가 침몰하기까지의 그 시간을 누군가는 93분이라고 하고, 누구는 120분쯤 됐을 거라고 한다. 93분이든 120분이든 그 93분, 혹은 120분은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진도 해역은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가, 그 물음을 던지는 곳이었다. 진도에서의 93분, 그것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수십 년의 역사, 한국 사회의 압축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은 더 나은 사회가 됐을까. 분명 그렇다고 보기에 많은 이들이 이번 사고를 놓고 20년 전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개탄한다. 그건 특히 21년 전인 1993년, 이번에 사고가 난 바다에서 겨우 100여㎞ 위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참사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아지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오히려 후퇴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다른 많은 것이 발전했는데 재난 대처는 20년 전과 그대로이니 사실상 후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다. 지난 세기 말의 서해훼리호 참사는 손쓸 새 없이 당한 사고였지만 해경은 신속하게 구조작전을 벌였고 많은 이들을 구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눈앞에서 수백 명의 생명이 물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됐으니 그걸 우리는 발전이며 '문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문명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미개'가 더 나을 것이다. 서해훼리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이제 배는 더 커지고, 재화는 늘어나고 소득은 높아지고 생활은 풍족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한 지점, 우리가 성취한 많은 발전의 이면의 '선진 한국'의 일그러진 면모들이 세월호에서 민낯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가차없이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 사회는 나아지고 있는가를 무섭게 추궁하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전에 우리는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나더라도 결코 진도 앞바다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주는 예수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의 의미를 되새기는 부활절이었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해 목숨을 바쳤듯이 어린 청소년들, 가장 죄 없는 이들이 우리 모두의 죄를 대속하려는 것일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인류에게 처절하게 물었듯, 우리는 저 '93분'에 대답해야 한다.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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