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슬픔, 분노…그 다음

슬픔은 때로 분노가 된다.  사랑하는 자녀를 창졸간에 잃었는데, 그 생때같은 자식의 죽음이 키를 쥔 선장을 비롯해 몇몇 사람의 무능과 오판, 오도, 구조 의무 유기 탓임이 드러났을 때, 참척(慘慽)의 슬픔은 억누르지 못할 분노로 바뀐다. 슬픔이 클수록 분노도 커진다. 사고 이후 한동안 살아있었을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우리를 화나게 한다.  일년 중 가장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에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을 먼저 떠나보낸 상황에서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보여준 안이함과 무신경, 전시행정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어린 학생들이 주고받은 "사랑한다"는 메시지에 눈시울을 훔치다가도, 이 와중에 알량한 이념을 끼워 팔겠다며 열을 올리는 나이 든 인간들의 작태에 얼굴을 붉히게 된다. 사고 이후 온갖 인간군상이 맨얼굴을 드러내는 가운데 일부 언론매체가 구조 현장에서 저지르고 퍼뜨린 오보와 선정주의적인 행태 또한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못하다가 허탈해하고 낙담했다. 이것밖에 되지 않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시스템에 절망했다. 그토록 허망하게 스러진 젊은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왜 막을 수 있었을 재해가 번번이 터지는가. 재해가 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는가. 우리는 왜 과거 재난으로부터 배우지 못했는가.  한국 사회의 재난예방ㆍ대응체계는 낙후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20여년 전인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때에 비교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세월호는 서해훼리호처럼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변침으로 인해 기울었다. 또 세월호도 서해훼리호처럼 복원력이 부족했다. 서해훼리호는 화물을 싣고 부리기 쉽게 갑판에 적재해 배의 윗부분이 무거운 상태였다. 세월호는 두 차례 개조되면서 객실 2개층이 위로 올려져 무게 중심이 위로 쏠려 있었다. 또 서해훼리호 구명보트 4척 중 하나만 펼쳐졌다. 세월호 구명보트 46척 중 작동한 것은 1척뿐이었다.  분노가 커질수록 우리는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책임자를 가려내면서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전철은 이번으로 끝내야 한다. 그것이 수많은 죽음을 더 허망하게 하지 않는 길이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국제부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