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출신 권오준은 어떻게 포스코 회장이 되었나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2013년 3월14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제45회 정기이사회. 이날 이사회에서 권오준 당시 기술부문장은 5명으로 한정된 사내이사진에 오르지 못했다. 이른바 포스코 5인회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직급이 사장인 그보다 낮은 부사장들도 사내이사진에 올랐는데, 자신만 제외되는 치욕을 맛봤다. 그는 이때 두 한자성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절치부심(切齒腐心)' , '와신상담(臥薪嘗膽)'.1년후 같은 자리에서 권 사장은 포스코 제8대 회장에 올랐다. 국내 재계 서열 6위인 포스코의 수장 자리를 꿰찬 것이다. 그는 지난해 이사회 이후 화려한 재기를 꿈꿨다고 한다. 그리고 차분히 준비했다. 포스코의 현존하는 문제점을 진단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머리 속에 구상해 나갔다. '하늘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기회는 곧 찾아 왔다. 지난해 말 정준양 전임 회장이 재선임 1년도 안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포스코가 새 회장 뽑기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쉽사리 회장직을 넘볼수 없었다. 기회는 왔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당시 정치권 등 외부에서 모 인사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나는 등 여건은 좋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그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그렇지만 이대로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지금껏 구상한 포스코 혁신 방안들을 다시한번 점검해 나갔다. 그러는 사이 유력 경쟁상대들이 떨어져 나갔다. 언론에서 후보로 이름 조차 나오지 않던 그가 부상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포스코 내외부에서 그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최종 3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기 보다 더욱 차분해지고, 겸손해졌다. 포스코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의 인터뷰 준비에만 열중했다. 권 사장은 CEO후보추천위원회의 면접에서 "기술로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정확한 기술을 개발하겠다. 이를 위해 시장의 동향과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것을 토대로 기술 개발에 전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경영 철학과 포스코 측이 거는 기대감이 담겨있는 대목이다. 특히 그는 미국 유학 생활과 EU사무소 소장을 거치면서 닦은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포부를 밝혔다. 그 자리에 있던 외국인 사외이사 등이 놀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최종 인터뷰에서 당당히 1인 후보에 올랐다. 권 회장은 포스코내에서 이른바 비주류였다. 그가 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비주류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가 회장에 오르게 된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다. 포스코 CEO 추천위가 회장을 고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점이 경영 능력과 함께 참신성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포스코 내부에서 연구직 한 곳에만 매진해왔다. 서울대 금속학과와 미국 피츠버그대 금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6년 연구원으로 포스코에 입사한다. 1996년 포스코 기술연구소로 옮겨온 후에도 EU사무소장, 기술연구소장 등을 거쳐 2009년 친정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원장을 맡아 포스코를 떠났다. 포스코에는 2011년 기술총괄 부사장으로 컴백했다. 그는 포스코 컴백 후 해외자원개발 사업 중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등에 있는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세계최초로 개발한 포스코 대표 기술인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를 이끌어냈고, 자동차강판과 전기강판을 비롯한 신소재 개발 등 포스코 R&D 분야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와 함께 한 연구원들은 "한번 매달린 연구는 무섭게 매진해 조기에 결실을 맺는 성취욕이 아주 강한 엔지니어였다"며"기술 문제만큼은 아주 도전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같은 커리어와 열정을 배경으로 그는 회장에 올라 첫 일성으로 '포스코 더 그레이트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시했다. 포스코 더 그레이트는 그가 회장 후보 인터뷰때 밝힌 것으로, 기본으로 돌아가 위대한 포스코를 만들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장인'인 권 회장이 경영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우세하다"며 "앞으로 자신의 경영 구상을 뒷받침할 조직 개편도 마친 만큼 포스코의 과거 영광을 다시 재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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