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2012년 7월. 기자회견장에 나온 김연아(24)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자신을 "대한민국 국가대표 김연아"라고 소개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현역 복귀와 소치 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2011 세계선수권을 끝으로 대회에 나가지 않은 지 1년 반 만이었다.김연아에게 스케이팅은 모든 것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박미희 씨가 피아노 등 여러 학원을 보냈지만 금세 싫증을 냈다. 몸이 아파도 먼저 스케이트를 챙겨 강습에 나설 만큼 피겨에 끌렸다. 대회가 주는 중압감, 국민적인 기대 등 도망치고 싶은 이유는 많았지만 끝내 얼음 위로 돌아왔다. 아직 어린 후배들을 이끌기 위해서였다.결심이 선 뒤론 일사천리였다. 누가 채근하지 않아도 고된 훈련을 스스로 소화했다. 연습량이 과도해 코치들이 말려야 할 정도였다. 어린시절 은사 류종현 코치는 복귀한 김연아를 다시 맡은 뒤 "연아에게 잔소리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다 알아서 한다"며 "내 제자지만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다.한 번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승부욕과 주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마이 웨이'는 선수 김연아를 다시 한 번 최고로 만들었다. 2013 세계선수권대회. 2년 만에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그는 공백기가 무색할 만큼 압도적인 우승(218.31점)을 차지했다. 복귀작인 '레미제라블'(프리 프로그램)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함께 경기를 한 캐롤리나 코스트너(27·이탈리아·당시 은메달)마저도 "김연아는 우리와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고 칭찬했다.
김연아[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그리고 올림픽 시즌. 김연아가 카타리나 비트(1984·1988 올림픽 우승) 이후 26년 만에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리라는 기대감으로 피겨계가 들썩였다. 그러나 김연아는 예기치 않게 발등을 다쳤다. 해외 언론은 "김연아가 부상으로 연습량이 부족하고, 대회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며 우려를 했다. 이후 시선은 러시아의 신예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에게 집중됐다. 그의 화려한 스핀에 시선을 뺏긴 미국 매체들은 리프니츠카야를 16세에 깜짝 금메달을 딴 타라 리핀스키(32·미국·1998 나가노 금)에 비유했다.그러나 김연아는 흔들리지 않았다. 피겨도 심장의 크기가 승부를 가르는 종목 아니던가. 그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연기에 몰입했다. 홈 텃세와 들쑥날쑥한 판정에도 눈을 감았다. 은빛의 날개를 활짝 펴고 마침내 날아올라 전설이 됐다.손애성 객원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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