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역사인식이 한국ㆍ일본 양국의 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다시 확인됐다. 계기는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哈爾濱) 역사에 지난달 19일 전격 개관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해 11월 브리핑에서 안 의사에 대한 평가를 요구 받고 "안 의사는 중국에서도 존경 받는 저명한 항일의사"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안 의사 표지석 설치 문제와 관련해 안 의사가 '범죄자'라고 주장해 우리 정부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샀다. 한일의 긴장관계를 고조시키는 원인은 역사에 대한 상반된 해석, 얽히고설킨 양국의 정치판이다. 역사인식이 서로 상반되는 한, 한일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일본은 당치도 않게 2차대전의 희생국이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자국이 2차대전 중 원자폭탄에 희생됐으며 종전 후 차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과거 자국의 만행이다. 이에 일본 스스로 침략국이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중ㆍ고교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야말로 좋은 예다.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가이드라인인 해설서에는 "다케시마(竹島)가 일본 고유 영토지만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명기됐다. 2008년 해설서 개정판에서 "다케시마를 둘러싼 일본과 한국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표현보다 더 개악(改惡)한 것이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본 청소년은 왜 한국이 다케시마(竹島)를 독도로 부르는지, 왜 한국이 일본해를 동해로 부르는지, 중국이 센카쿠열도(尖閣列島)를 왜 댜오위다오(釣魚島)로 부르는지, 러시아가 홋카이도(北海道) 이북 도서를 '북방 영토' 아닌 쿠릴열도로 부르는지 배우지 못하게 된다. 이대로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일본 중ㆍ고교생들은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으로 알게될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1988)에는 1945년 태평양 전쟁의 가해국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평범한 어린 남매에게 닥친 비극이 그려져 있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 '나오키' 수상작이 원작인 '반딧불의 묘'는 전쟁의 잔혹함과 패전국 일본의 피폐한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남매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영화는 "일본도 피해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영화 속의 아이는 하늘을 뒤덮은 폭격기가 밉고 또 미울 뿐이다.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과 관련해 해결책은 과연 없는 걸까. 여기서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수석 연구원의 지적에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에 일본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참회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명확히 제시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한일 '공동성명'을 제안하기도 했다. 공동성명에서 한국과 일본은 과거 역사의 상처를 서로 인정하고, 이를 다시 논쟁화하지 않으며, 공동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확인하고, 평화ㆍ유대를 약속하며, 새로운 안보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로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양국 문제 해결에 무력 사용을 배제한다는 확약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양국의 긴장관계가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일본에 한국 주도 하의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래야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야심을 둘러싼 의혹이 불식된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를 인정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진수 국제부장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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