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 남영비비안 대표이사
여성속옷이 그 크기에 비해서 가격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크기도 작고 겉옷처럼 밖으로 보이지도 않는데 가격대가 높다고 한다면, 나는 브래지어 안에 몇 가지의 부자재가 사용되는지 알고 있냐고 묻는다. 브래지어에는 적어도 25가지 이상의 부자재가 필요하다. 체형을 보정하기 위한 기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옷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부자재가 필요하다. 사이즈도 옷의 경우는 보통 3단계로 단순하지만 브래지어의 경우는 가슴둘레와 컵의 사이즈를 결합해 최소한 9가지가 진행된다. 게다가 예전과는 달리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이나 색상도 다양해, 한 시즌에 선보이는 스타일의 수가 백 가지는 훌쩍 뛰어넘는다. 과거에는 속옷의 스타일도 단순했고 색상은 아이보리 내지는 옅은 핑크를 포함한 서너 가지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ㆍ부자재를 개발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이 한 회사와 자체 공장 내에서 모두 이뤄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그에 따라 소비자들의 욕구는 빠르게 변하고 다양해졌다. 그 변화 속도에 맞춰 더욱 다양한 제품을 좀 더 빨리 공급해야 하는 환경으로 변했고, 기업 혼자만의 활동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면서 품질과 빠른 기동성을 갖춘 우수한 협력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 효율적인 체제가 됐다. 이처럼 오늘날 한 회사는 다양한 협력사와 관계를 맺으며 경영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 역할도 규모도 가지각색이다. 최근 갑을관계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제품을 납품하거나 납품받는 관계에서 상하의 수직적 구조로 규정되곤 했다. 요즘은 그런 관계를 넘어서 동반자적인 입장에서의 '협력사' 또는 '파트너'의 개념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그것이 함께 성장하자는 '상생(相生)'이다. 함께 상생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바로 거기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시작된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엔 제품을 납품한 후 결제대금을 받기 위해선, 제품을 거래한 해당 유통사에 직접 방문해야만 했다. 한 번은 결제대금을 받기 위해 유통사에 찾아가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하지만 담당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가버리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씁쓸한 경험은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모든 협력사의 결제 대금을 통장으로 지급해주기 시작했고, 상품대금 지급방식을 개선해 자금 운용을 원활하게 하도록 했다. 또한 요즘에야 사소하고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우리 회사 담당자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하는 협력사 담당자 및 대표들이 보다 편하게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상담실을 세팅했고, 각 자리마다 무선 인터넷을 설치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다. 그 외 음료구비 등 사소한 비품에도 신경을 써 방문하는 협력사 담당자 및 대표들이 갖게 되는 심적 부담감을 최소화하려 했다. 심적인 이해에서 더 나아가 서로의 상황과 입장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다. 알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남영비비안의 경우는 주로 전문점 대표나 협력사와 함께하는 워크숍 또는 간담회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제품이 점점 고급화되어 품질 경쟁이 필수인 속옷기업에 있어 원자재를 제공해주는 협력사는 물론이고, 고객을 직접 대하는 전문점 대표들에게도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대한 새로운 정보 습득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통의 기회를 갖는다 하더라도 서로의 대화를 마음속 깊이 새겨듣는 '열린'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자세의 기본은 상대방을 나와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다시 '역지사지'의 자세와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상생을 위한 길은 제도적인 부분보다는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자세에서 시작한다. 위아래를 나누기보다는 함께 노력해서 발전해나갈 상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서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미래의 길이 열린다.김진형 남영비비안 대표이사·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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