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해킹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관급공사 낙찰가격을 조작해 1100억원 규모 공사를 불법낙찰받은 일당이 무더기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조재연)는 컴퓨터등사용사기 및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 3일 건설업자 9명을 불구속기소하는 등 경기·인천·강원 지역에서 불법낙찰 조직으로 활동한 해킹프로그램 개발·관리자와 입찰브로커, 건설업자 총 28명을 적발해 21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해킹프로그램 관리자 윤모(58)씨, 각각 84억~604억원 규모 불법낙찰에 관여한 입찰브로커 3명 등 4명은 구속기소됐다. 검찰은 달아난 해킹프로그램 개발자 김모(37)씨, 입찰브로커 또 다른 김모(49)씨 등 4명을 지명수배 조치하고, 범행가담 정도가 가벼운 건설업자 3명은 입건유예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 5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조달청이 운영하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일명 나라장터와 경기·인천·강원 지역 지자체 사이를 오가는 입찰 정보를 해킹한 뒤 낙찰 하한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35개 업체 77건(낙찰가 기준 1100억원 상당)의 공사를 불법낙찰한 혐의를 받고 있다.이들이 노린 것은 2002년 조달청이 구축한 나라장터에서 오가는 입찰 정보다.나라장터는 공사기초금액을 기준으로 산출된 15개 공사예정가(예가)를 암호화해 조달청 서버와 지자체 재무관 PC 사이에서 주고받은 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뽑은 추첨번호에 해당하는 예가를 평균해 나온 최종하한가와 가장 가까운 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되는 방식이다. 건설업체들은 입찰금액을 써낼 뿐 자신들이 뽑은 예가 추첨번호는 알 수 없어 담당 공무원과의 유착이나 담합이 어렵고, 나라장터의 보안 자체도 우수해 직접 해킹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4월 무더기 적발(31건, 291억원 규모)된 경북지역 불법낙찰 일당의 경우 나라장터 대신 지자체 재무관 PC와 입찰참여 건설업체 PC에 악성프로그램을 유포해 예가를 빼내는 수법을 썼다. 평소 친분관계를 이용해 직접 재무관 PC에 악성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입찰 참고자료처럼 꾸민 이메일을 뿌려 수백여 업체 PC에 악성프로그램이 자동 설치되게 했다. 6개 업체가 203억원 규모(12건) 공사를 불법적으로 따내다 이번에 적발된 인천 지역의 경우 2010년 11월 연평도 피격으로 옹진군 일대 시설 공사가 몰릴 것을 예상한 일당이 이듬해 4월부터 계획적으로 재무관 PC에 악성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악성프로그램도 한층 진화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번에 적발된 일당은 예가를 빼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별도로 생성한 예가로 바꿔치기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가 알려주는 대로 조작된 낙찰가를 이용해 입찰에 나선 건설사들은 낙찰가격의 4~7%를 떼어 현금으로 대가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개발자가 입찰브로커에게 접근해 악성프로그램을 제공한 뒤 대가가 돌아오면 서로 나눠가지는 식으로 오간 돈이 34억 63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나라장터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미리 확보해 둔 재무관 PC 인증서와 건설사 인증서를 이용한 모의공사 발주-투찰로 데이터를 분석한 뒤 악성프로그램도 업그레이드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악성프로그램이 설치된 채 남아있는 건설업체는 적발지역에만 580여개로 검찰은 이 같은 행태가 전국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공무원과의 유착이나 건설사 간 담합 등 전형적인 입찰비리 유형을 벗어나 국가 중요 기간 전산망을 무력화시킨 신종 범죄”라며 “나라장터 서버를 직접 해킹하지 않더라도 이와 연계된 이용자 PC에 보안취약점이 있으면 언제든 해킹으로 낙찰 하한가를 조작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쌓은 수사기법을 적극 활용해 불법낙찰이 의심되는 관급공사 전부를 철저히 수사함으로써 입찰비리를 뿌리뽑겠다는 방침이다. 조달청 역시 같은 수법으로 불법낙찰이 재발하지 못하도록 지난해 10월부터 입찰자 투찰이 끝난 뒤엔 조달청 서버에서 예가 순번을 무작위로 재배열하고, 올해부터는 나라장터와 재무관PC를 상호비교하는 등 체계를 보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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