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해 10월3일 미혼모 A(29)씨는 막 출산한 아기를 자신의 집 주변 폐가에 갔다 버렸다가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었다. 아기 아버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출산한 A씨는 부모에게 들킬 것이 걱정돼 아기를 유기했다. 그러나 A씨는 곧 후회하고 부모에게 출산 사실을 말한 후 아기를 데리러 다시 갔지만 이미 숨진 다음이었다. A씨처럼 출생하자 마자 이런 저런 사정을 이유로 아기를 버리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해마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이 오면 아기들이 화장실이나 쓰레기통 등에 대책없이 버려졌다가 숨지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생겨난 게 유럽 등에서 시행 중인 '베이비박스'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서울 관악구 B 교회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에 대한 논란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거세다. 신생아의 생명권 보장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과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 아기들 얼마나 버려지나?우리나라에서 이런 저런 사유로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2년 2만2341명에 달했던 '요보호아동' 수는 계속 감소해 지난해 말 현재 8003명으로 줄었다. 사유 별로는 2011년 기준 미혼모ㆍ미혼부ㆍ혼외자 가 2515명, 부모이혼 1695명, 학대 1125명, 비행ㆍ가출ㆍ부랑 741명, 부모 사망 536명, 부모 빈곤ㆍ실직 418명, 부모 질병 154명, 미아 81명, 유기 아동(기아) 218명 등이다. 이들은 시설 또는 가정에 수용ㆍ입양ㆍ위탁돼 보금자리를 찾는다. 이중 A씨의 경우 처럼 낳자마자 출생등록도 없이 버리는 경우는 '유기 아동(기아)'으로 분류된다. 특이한 점은 전체 요보호아동 수가 줄어든 반면 유기 아동은 최근 몇년새 거꾸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1654명이었던 유기 아동은 2010년 191명으로 바닥을 친 후 2011년 218명, 2012년 235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선 3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베이비박스란?베이비박스란 온도, 습도 등 버려진 아기의 생존이 가능하도록 '생명보호장치'가 달린 상자를 말한다. 아기를 넣은 후 벨을 누르면 보호 담당자가 즉시 달려와 아기를 보살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곳에 버려진 아기는 2~3일간 응급 처치ㆍ보호를 받은 후 관할 구청의 확인, 건강진단 등을 거쳐 일시 보호 시설에 보내지고 추후 입양ㆍ시설 입소ㆍ가정 위탁 등의 보호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 B교회가 담벼락에 처음 설치해 운영 중이다. 정부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받지 않은, 좋게 말하면 미인가 나쁘게 말하면 불법 시설물이다. 해외의 경우 독일에서 100개, 체코 47개, 폴란드 45개 등에서 활발히 운영되고 있고, 미국, 헝가리,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러시아, 중국 등 18개 국가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베이비박스' 찬성 vs 반대 논란 거세베이비박스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기 아동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며 전국적으로 확대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화장실ㆍ쓰레기통ㆍ지하철 사물함 등에 함부로 버려져 결국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하는 유기 아동들을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3조, 6조상 아동의 생명권이 최우선 보장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찬성 근거로 삼고 있다. 또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출생년원일 등이 적혀 있고 부모 상담도 하고 있어 자신의 기록을 알지 못하는 기본적 인권 침해의 소지는 적다는 입장이다.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명확하다. '쉽게' 아기를 버릴 수 있는 점이 더 많은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또 아동이 자신의 출생기록을 가질 권리를 침해하며, 입양인이 친생부모를 찾고자 할 때 필요한 중요 기록을 볼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점도 든다. 특히 유엔 아동권리협약 7조가 아동은 출생직후 등록이 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유엔이 전세계적으로 베이비박스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나?먼저 베이비박스가 유기아동의 생명을 구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직접적인 사실 관계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보건복지부 사망원인 통계에서 간접적인 추이는 파악된다. 0세 아동이 유기 등으로 타살된 것은 2009년 인구 10만명당 5.5명에서 2010년 6.0으로 다소 늘었다가 2011년 4.0명, 2012년 2.6명으로 감소했다. 이와 관련 B교회의 베이비박스엔 2010년 총 4명의 아기가 버려졌지만, 언론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후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10월말 현재 214명 등으로 급증했다. 일단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파악할 수 없지만 베이비박스가 본격 운영되기 시작한 후 0세 이하 아기들이 유기 등에 의해 타살되는 숫자가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유기 아동 조장 주장에 대해선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 측에선 베이비박스 때문이 아니라 2012년 8월부터 개정ㆍ시행된 입양특례법 때문에 유기 아동이 늘어났다는 주장이다. 입양특례법이 입양 기관에 아기를 맡길 때 반드시 출생신고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바람에 신분 노출 등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갖다 맡기고 있다는 것. 반면 반대 측에선 베이비박스가 유기 아동수를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유기 아동 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2년 8월 말 이후가 아니라 그 이전인 2010~2011년 사이다. 유기 아동수는 2009년 222명에서 2010년 191명으로 줄었다가 베이비박스가 방송 등에 의해 보도돼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2011년 218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2012년 235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베이비박스로 인해 전국의 아동 유기가 서울로 몰리면서 서울시가 예산ㆍ시설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유기 아동 수는 2010년 43명에서 2011년 70명, 2012년 147명, 올해는 300명을 돌파할 기세다. 반면 경기도는 2011년 29명에서 2012년 26명, 부산은 2011년 23명에서 2012년 16명 등 타 시도는 감소 추세다. ◇ 제도적 한계ㆍ개선점은?우선 입양특례법 개정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선 입양기관에 맡길 때 출생신고를 하라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고, 미혼모 등에게 아기를 몰래 버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현실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미혼모는 병원 측의 출산 증명서만 있으면 되지만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선 유전자 검사 등을 거쳐 자신의 혈육임을 입증하는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도 '몰래 유기'를 부추기는 것이니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대 입장도 있다. 출생한 아기도 자신의 부모ㆍ출생장소 및 시간 등 출생기록을 추후라도 알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만큼 이를 의무화한 입양특례법 개정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아기를 낳은 이들에게 '쓰레기 버리듯' 쉽게 아기를 버릴 수 있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책임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점도 반대 측의 논거다. 반대하는 이들은 아동 유기의 원인이 가족관계등록부의 출산 사실 등재인데, 실은 아동 입양 후 해당 기록이 삭제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또 현재 서울로 유기 아동이 몰려들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선 보건복지부가 유기 아동의 보호는 버려진 곳의 관할 광역자치단체가 책임지도록 한 규정을 개정해 타 시도에서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거나 아예 아동보호 업무 자체를 회수해 모자라는 곳과 넘치는 곳을 조율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유기 아동을 줄여 나가기 위해 미혼모ㆍ미혼부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나가는 한편 사회가 함께 키운다는 생각으로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 등 각종 정책과 제도적 지원을 수행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아동복지기관 관계자는 "청소년들에 대해 임신과 출산, 양육 책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며, 혼외자 등에 대해선 여성에게만 책임을 지울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책임을 묻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결국엔 '책임질 줄 아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동 유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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