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절차 무시하고 밀어붙인 기초연금법안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사퇴 파동을 몰고 온 기초연금 정부안 결정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부처 장관의 생각이 달랐고, 정부안에 장관 결재가 없었다. 자문기구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 논의한 내용이 뒤집어졌다. 청와대가 주도해 밀어붙였고 장관과 자문기구는 들러리를 섰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건과 증언에 따르면 복지부는 행복연금위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기초연금 수령액을 소득에 연계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8월30일 장관이 대통령에게 복지부 추진계획을 보고한 뒤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2주 뒤 복지부 담당 국장은 국민연금 연계로 바뀐 안을 청와대에 이메일로 전달했고 이대로 9월25일 발표됐다. 장관 결재는 없었다. 복지부는 구두로 보고해 문제가 없다지만, 중요 법안을 만들면서 장관 결재를 받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책임장관제에도 위배된다.  복지부가 당초 소득 연계 방안을 마련한 것은 국민연금과 연계할 경우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한 저소득층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입기간 10년 미만 지역가입자들이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고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가 장관을 배제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것은 대선 핵심공약인 데다 재정과 관련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안대로 소득과 연계하면 향후 노인인구 증가에 따라 국가 부담도 커진다. 국민연금과 연계하면 국민연금 가입률이 높은 청년층이 노인이 될 때 상대적으로 국가 부담이 줄어든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적고 가입기간이 짧은 지금 노인들은 대부분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어 불만이 적고, 기초연금이 줄어들 청장년층의 불리함은 수십년 뒤 일로 반발이 적을 거라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주무부처와 의견이 다르면 시간을 갖고 더 논의해야지 청와대가 주도해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국민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 새로운 제도, 더구나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책 도입에 절차상 하자가 있어선 곤란하다. 정책결정의 투명성이 결여되면 당위성도 위협받는다. 기초연금 차등 지급 문제는 세대ㆍ계층 간 이해가 충돌하는 민감한 사안이다. 국회 법안심의 과정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주목한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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