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한 민물새우탕은 정말 국물이 끝내준다는 말 그대로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하림은 오래간만에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 순간 그동안 살구골에서 벌어진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소주까지 한잔 곁들였다.“혜경씨랑은 자주 통화해?”식사가 한창일 무렵, 동철이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 그대로였다. “아니. 왜.....?”하림은 약간 찔리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참동안 전화도 못해봐서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괜히 미안했던 터였다.“왜라니? 내가 할 질문을 자네가 하네, 그랴. 죽니사니 질질 짤 때는 언제고 벌써 헤어졌어?”“지랄.”동철의 시비에 하림은 멋쩍게 받았다. 하긴 맞는 말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한창 때를 생각하면 하루에 열두번 전화하고 골백번 문자 메시지를 날려도 모자랄 판에 마치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처럼 지내왔던 것이다.“그렇잖아도 지난 주 혜경씨 미장원에 갔다왔다. 머리도 좀 자를 겸. 너한테 소식이 없다고 조금 섭섭한 눈치더라.”“그래....?”“시골 들어가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고 말이야. 은하도 봤어. 하림이 아저씬 왜 안 오느냐고 묻더라.”동철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어디까지 농담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모르지만 틀린 말은 아닐 것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막상 핸폰을 열고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닫고 했던 것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버렸던 것이다. 그 사이 하소연이란 존재가 나타난 것도 하나의 변수였을 것이다. 마음의 작은 균열이 괜한 죄책감으로 이어져 입을 다물게 하고 말았는지 몰랐다.“그나저나 이층집 영감은 한번 만나 봤나요?”윤여사가 말했다.“아뇨. 그 딸은 한번 봤는데.....”“딸....? 미인이람서요?”“아무렴 윤여사만큼이나 하려구?”동철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전히 농담투로 말했다.“고년이 보통 아니라고 들었어요. 멍텅구리 이장 운학이 그녀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구. 그래, 직접 만나보니까 어때요?”윤여사의 도톰한 입술에서 거침없이 년짜가 튀어나왔다. 그리고보면 윤여사 고모할머니의 말투와 닮은 점이 없지 않았다. 하림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렇다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었고, 아니라고 펄쩍 뛸 수도 없었다.그래도 과히 듣기 좋은 표현은 아니었다. 윤여사는 여전히 자기 고모집 누렁이 두 마리를 엽총으로 쏘아죽인 범인이 이층집 영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년짜를 함부로 쓸 수야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글쎄요.”하림은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리며 애궂은 소주잔을 홀랑 입에 털어넣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영현 기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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