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1967년 오늘, 중앙정보부(오늘의 국가정보원)는 대형 공안 사건 하나를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소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이죠. 발표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서독,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 공부하러 나간 유학생 및 현지 한인들이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교육을 받고 국내 인물들과 공조해 대남적화활동을 벌였다는 겁니다. 혐의자 중에는 유명 작곡가 윤이상씨를 비롯해 화가 이응로씨 등이 포함돼 있고 그 인원이 무려 194명에 달해 나라안이 발칵 뒤집어 졌습니다.남북 관계가 극단적 대치관계에 있던 당시에 간첩 사건 발표만큼 주목을 받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수사는 국내로도 파급돼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교수 및 강사를 맡고 있던 사람, 연구소장, 공무원 등이 대거 혐의자에 올라 조사를 받았습니다. '귀천'으로 유명한 천상병 시인도 혐의자 중인 한 사람과 친구로 친하게 지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결국 풀려나긴 했으나 행려병자 신세로 전락할만큼 폐인이 돼 버렸습니다.법원의 심리는 1969년 3월까지 계속돼 최종 사형 2명, 실형 15명, 집행유예 15명, 선고유예 1명, 형 면제 3명 등의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바로 이듬해인 1970년 광복절을 맞아 사형 판결을 받은 2명을 포함해 전원을 석방해 버립니다. 서독과 프랑스와의 외교마찰을 우려했던 것입니다.한참 뒤인 2006년 1월 과거사 진실규명위에서는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 접촉을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며 정부에 사과를 권고했습니다.그렇다면 당시 중앙정보부는 왜 사건을 무리하게 적용했을까요? 이는 1967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집권당은 '3선 개헌'을 계획하고 있었고, 그해 6월 8일 치러진 6.8총선에 대한 부정선거 시위가 격화되고 있었던 때 였기 때문에 국면전환용 사건이 필요했을 겁니다.결국 역사의 수레바퀴에 애꿎은 사람들만 곤욕을 치른 셈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긴 그런 일이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요...백재현 뉴미디어본부장 itbri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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