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동양인 같지 않은 체격에 조각 같은 외모,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정우성은 지난 1994년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소년의 티를 벗지 않은 이십대 초반의 이 청년은 영화 ‘비트’를 통해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급부상했고 뜨거운 열풍을 일으켰다. 신기한 것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불어 닥친 열풍의 온기가 간직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많은 이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가 지금 이 순간에도 건재하다는 점에 있다. 영화 ‘감시자들’에서 악역 제임스로 분해 돌아온 정우성을 서울 모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간 정우성을 보여주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저는 그 전에도 이런 면 저런 면이 있다고 계속 얘기를 했죠. 단순히 매체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전달한다는 거는 굉장히 힘들어요. 나라는 사람을 보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요새 ‘런닝맨’을 보면서 ‘정우성이 저래?’ 하고 놀라는 걸 보면 지금이 바른 타이밍인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분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이제야 봉인이 풀렸다’고.(웃음)”그는 과거를 그리워하지도,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강산이 바뀌어도 두 번은 바뀌었을 20년이라는 시간. ‘배우 인생 20년’을 자축하며 쉬어갈 법도 한데, 그는 앞으로의 20년을 어떤 배우로서 보낼 것인가에 대해 구상하고 있다. 정우성은 “자유롭고 다양하게 나와 잘 맞는 캐릭터를 찾아가면서 앞으로의 20년을 잘 쌓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그 때 사랑을 좀 더 알았더라면2주에 걸쳐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 그는 온종일 뛰고 부딪히며 사력을 다해 방송에 임했다. 뿐만 아니라 수박 먹방, 블롭점프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큰 웃음을 줬고 시청자들은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꼈다. 한 때 우리네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던 것 같던 그는 어느새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며 대중들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동떨어지게 되죠. 어릴 적 인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릴 적 온전하지 못한 학창시절의 영향이 커요. 갑자기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고 그러다보니까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동떨어지게 됐죠. 그래서 그런 ‘당연한 일상’에 대한 궁금증도 크고요. 애정에 대한 결핍도 있어요.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내 스스로의 정립을 해야 했죠. 연애도 서툴렀고, 물론 여자친구는 오래 사귀었지만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좀 더 알았더라면 더 세련되게 연애를 했을 것 같아요. 그때는 모든 게 신비로웠으니까..”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던 정우성은 오는 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감시자들’에서 제임스로 분했다. 오랜 연기 내공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특유의 존재감을 과시, 영화에 큰 힘을 실어줬다. 언론 시사 후 영화는 물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그 역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저도 칭찬 많이 받았어요.(웃음) 트위터 글이나 기자들의 평에 ‘아주 훌륭했다’ 그런 내용이 있었죠. PD가 보여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좋아요. 들뜨고.. 사실 전 조심스러웠어요. 궁금하니까 많이들 온 거 같은데 내 기대보다 (영화나 평이)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영화도 좋고 평도 좋았어요. 마치 ‘오래간만에 잘 왔어. 어디 갔다 이제 왔어?’ 그런 말을 하는 느낌이었죠.” ◆ 제임스 역할에 날개를 달다이번 작품에 출연하면서 정우성은 두 감독(조의석, 김병서)에게 “나를 가지고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마라”고 주문했다. 최대한 자신이 부각되지 않기를 원했던 것. 원래 받은 시나리오에서도 하윤주가 주인공이고 그 옆에 반장이 있고, 감시반이 범죄자를 쫓는 얘기였기 때문. “감시반이 쫓는 범죄자가 가볍지 않고 대단한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역할이죠.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 그게 제임스가 해야 할 몫이었어요. 얼마 나오지 않는 긴장감을 채워야하는데 나이 어린 배우가 하면 무거운 긴장감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죠. 그래서 제가 한다고 했어요. 본인들(감독들)의 기획 의도와 상관이 없는 게 훅 들어오니까 아마 반가운 손님이었을 거예요.(웃음) ‘정선배가 하는데 제임스 역할을 더 키워서 보여주자’ 하는 얘기가 있는 것 같아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극중 제임스는 말수도 별로 없고 움츠린 태도 속에서 눈빛과 행동만으로 모든 상황과 감정을 정리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윤주(한효주 분)와 황반장(설경구 분)을 빛나게 했다. ‘새로운 악역의 탄생’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낸 정우성은 ‘감시자들’을 통해 또 한 번의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는 연기를 하면서 감독과 의견도 많이 주고받는 편이다.“후배 감독들과 해서가 아니라 의견을 많이 내는 것은 제 스타일이에요. 원래 작품 할 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영화는 액션 컷트에 공과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가는 장르잖아요.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감독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지, 내 아이디어를 채택해달라는 주장은 아니에요. 오히려 나이 많은 선배감독들이랑 얘기하기가 더 편하죠. 후배 감독들에게 말하면 선배의 말이라서 무조건 들을까봐 조심하는 편이에요. 물음표를 다는 형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죠.”‘감시자들’을 촬영하면서도 그는 감독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많은 물음표들을 나열한 듯 보였다. 그래서 매력적인 제임스를 만들어냈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며 극을 살렸다. 이는 지나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작품을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이뤄낸 성과가 아니었을까. 그가 앞으로 보여줄 20년간의 연기도 무척 기대된다. 유수경 기자 uu84@사진=송재원 기자 sunny@<ⓒ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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