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디지털 세상과 돼지털 세상

알람시계는 없다. 대신 새로 끓인 커피향이 나고 자동으로 커튼이 열린다. 방 안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최첨단 침대가 부드러운 등 마사지를 해 준다. 하지만 이런 모든 첨단 기능에도 결국에는 "오늘도 지각할 거야, 빨리 일어나~"라는 와이프의 날카로운 고성을 듣고서야 잠을 깬다.  어제 저녁회식 숙취에 못 이겨 거실에서 비틀대는 사이 자동화된 옷장에서 깨끗한 양복이 나와야 하는데 아뿔싸, 드라이클리닝 맡기는 걸 깜박했다. 결국 어제 회식자리에서 고기 굽는 냄새에 찌든 양복에 냄새 탈취제를 뿌려야 한다. 중앙컴퓨터 시스템은 오늘도 가사 로봇을 통해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제시한다. 내가 승인한 일들이다. 하지만 무시한다. 마시던 커피는 아직 남아 있고 쌓여 있는 빨래들은 여전히 세탁기에 처박혀 있다. 오늘도 프레젠테이션에서 고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무한대의 저장 능력을 가진 원격 디지털 저장시스템인 클라우드(Cloud)에 접속한다. 하지만 하필 이럴 때 바이러스에 감염된 클라우드 때문에 가방 속의 노트북을 펴 들 수밖에 없다. 해외 고객사와 만나 자동 언어번역 프로그램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을 계획이다.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번역해 주기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난 최근 어학원에 다시 다니고 있다. 지난번 프레젠테이션에서 경쟁사 직원이 유창한 현지 언어로 클라이언트와 직접 대화하면서 일감을 빼앗긴 아픈 상처 때문이다. 직장까지 출근은 무인자동차를 이용한다. 교통데이터를 파악한 신발 뒤꿈치의 햅틱(컴퓨터 기능 가운데 촉각과 힘, 운동감 등을 느끼게 하는 기술)이 발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10분 정도 더 집에 머문다. 무인자동차를 수동 운전해 가면 그 정도 시간은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무인자동차보다는 수동 운전이 훨씬 더 빠르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저서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나오는 '미래의 어느 날 아침'의 한 대목을 순수하게 개인 입장에 적용시켜 뒤집어 본 가상 스토리다. 기술의 발전이 신(新)세계를 열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켜 왔다. 단적으로 휴대전화의 기능적 발전은 양복 주머니에서 지갑을 없앨 수 있지만 분실에 따른 위험은 단순히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와 달리 감당해야 할 뒷수습의 수준을 엄청나게 높일 것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의 연장 역시 현대 경제활동 인구들에게 과부하를 걸고 있다.  '빠른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은 편견이었을 뿐이라고 투덜거리지만 아무도 과거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슈밋 회장이 지적한 데로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보안을 위해 강력한 암호화가 보편적으로 도입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자인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될지, 아니면 광고에 나온 우스갯소리처럼 돼지털 신세가 될지는 결국 사람에 달린 셈이다. 신기술로 인해 한순간 횡액을 당할 수 있는 개연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판단하는 척도는 돈과 술, 여자, 그리고 시간 등 4가지에 대한 태도라고 한다. 여기에 앞으로는 '기술'이 더 추가돼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성 회복이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향한 꿈이 악몽이 될지 길몽이 될지는 인간성에 달려 있다.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천재가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인재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고의 기술이 인간 세상에 최고의 성취를 주려면 윤리와 도덕성의 책무가 선결돼야 한다. 박성호 아시아경제팍스TV 방송본부장 vicman1203@<ⓒ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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