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민규ㆍ황준호ㆍ조슬기나ㆍ임혜선 기자] "외국인 환전 비율이 지난해만 해도 중국 관광객이 60%, 일본 관광객이 40%였는데 올해는 중국 80%, 일본 20%로 일본인이 확 줄었다." -명동 환전상"요즘은 관광객 중에서는 중국인 고객들이 대부분이어서 중국어 가능 아르바이트생을 늘렸다" -명동 화장품가게 점장일본인 천국으로 통했던 명동 거리가 달라지고 있다. 엔저가 심화되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줄고 중국인들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아시아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은 저가 화장품 브랜드들은 최근 들어 일본인이 줄고 중국인 관광객이 늘자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점원들을 속속 배치하고 있다. 원ㆍ엔 환율은 19일 기준 1120원대를 기록 중이다. 1년 전보다 20% 가량 하락한 것이다. 엔ㆍ달러 환율도 1년 전보다 20%나 오르면서 달러당 100엔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이처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크게 줄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1~2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은 4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4% 줄었다. 반면 중국인 관광객은 30.9% 늘어 44만명을 넘어섰다. 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누구보다 울상인 곳은 승객이 줄어든 항공업계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4분기 17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분기 3132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엔화 약세와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줄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아시아나항공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시아나의 지난해 4분기 일본 노선 왕복 탑승률은 전년 동기보다 7.6% 가량 줄었다. 아시아나의 경우 일본 노선이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하고 있어 실적 부담이 적지 않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일본으로 나가는 승객이 다소 늘긴 했지만 일본에서 들어오던 수요를 메울 만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엔저에 따른 영향은 비단 일본인 관광객 감소뿐만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도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2월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49개 수출품 중 절반인 24개 품목이 전년 동기보다 수출이 줄었다. 특히 우리나라 10위권 내 주력 수출품이면서 일본과의 경합도가 큰 석유제품ㆍ자동차ㆍ기계류 등이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1위 품목인 석유제품은 수출 증가율이 지난해 43.9%에서 올해 -0.7%로 추락했다. 반면 일본은 같은 기간 수출 증가율이 -41.8%에서 4%로 올라섰다. 자동차도 일본에 밀렸다. 디젤 중형 승용차의 경우 한국은 지난해 수출 증가율이 59.5%로 승승장구했으나 올 들어서는 -11.8%로 뚝 떨어졌다. 반대로 일본은 -36.3%에서 12.3%로 급상승했다.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엔화 약세와 자동차산업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원ㆍ엔 환율이 1%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1.2%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1·2위 완성차업체인 현대ㆍ기아차는 엔ㆍ달러 환율이 95엔에서 100엔으로 오를 경우 영업이익이 1.31%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최근 급속히 진행된 엔저 현상이 우리나라 수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엔저가 더욱 심화될 경우 그나마 제자리를 지켜오던 전기전자 등 일부 수출품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엔저가 반가운 곳도 있다. 바로 엔화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이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한 제조업체는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대였던 2006년 10억엔 규모의 엔화대출을 받았다. 한때 엔고로 원ㆍ엔 환율이 1600원대까지 오르며 갚아야 할 돈이 두배로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엔화 가치가 지속 하락하면서 상환 및 원화대출 전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환차손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출을 받았을 때보다는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심 추가 엔화 하락을 기대하고 있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엔화대출 잔액은 1조1235억엔(약 13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3% 줄었다. 같은 기간 엔화대출 평균금리도 4.02%에서 3.82%로 내려갔다.국내 외화대출 잔액은 2007년 8월 금융당국의 외화대출 용도 제한 조치에 따라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너도나도 엔화대출을 받았다가 극심한 엔고로 인한 환차손으로 문을 닫는 폐해가 많았기 때문이다.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엔화대출을 보유한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며 "환차손이 많이 줄어 일부 엔화대출을 원화대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추가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곳들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박민규 기자 yushin@황준호 기자 rephwang@조슬기나 기자 seul@임혜선 기자 lhsro@<ⓒ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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