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전통기념품을 선물하려면 꽤 시간이 걸립니다. 세계인들에게 미적 공감을 느끼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만의 전통적 가치를 잘 드러내는 물건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 결과, 제가 자주 고르는 것은 골무입니다. 아름다운 문양이 수놓아진 골무를 몇 개 액자에 담아 선물하면 대부분의 서양친구들은 감탄사를 연발하곤 합니다. 값도 아주 저렴해서 좋습니다. 이미 골무를 받은 친구에게 다시 선물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제가 좋아하는 것은 하회탈입니다. 그런데 하회탈을 선물 받은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탈들은 남미나 아프리카의 마스크에 비해 매우 소박하고, 또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어떤 경우에 쓰는 탈인지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친구들에게 가끔 하회 별신굿놀이, 그 가운데에서도 양반선비마당을 보여 주곤 합니다. 양반선비마당은 아주 재미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집중해서 볼 수 있고, 보고 나면 하회탈에 아주 흡족해합니다. 양반선비마당은 지배층의 허세를 폭로하는 풍자극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양반과 선비는 자신이 더 학식이 많고 지체가 높다고 잘난 체를 합니다만 사실 이들은 글 따위는 읽어본 일이 없고, 오직 부녀자에만 관심이 있는 속물들입니다. 백정이 정력에 좋다는 소 불알을 들고 나타나자, 결국 양반과 선비는 체면 따위는 내팽개친 채 그걸 차지하려고 다툽니다. 조선 후기, 공리공론만을 일삼고 현실에 무능하던 지배층에 대한 민중들의 시선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지요. 사실 어떤 역사가들은 선비들의 시대착오적인 관념론이야말로 조선을 망하게 한 커다란 이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비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이 배우고 익힌 이상을 위해 삶을 걸었던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육신이 그랬고, 매천 황현이 그랬습니다. 돈과 배경이 있지 않으면 절대로 합격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과거제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던, 그래서 국가에 아무런 빚을 지고 있지 않던 황현은 "나라가 망했으나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원통치 않겠는가?"라고 짧게 씁니다. 매천과 같이 도덕과 명분을 실리의 윗길에 놓는 것을 선비정신이라고도 합니다. 2013년 오늘, 선비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일 겁니다. 우리 사회는 현안들이 쌓였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거대담론과 이상론을 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장 현실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전문가들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 케케묵은 선비정신이 그립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실용성, 더 솔직히 말하면 경제적인 가치의 창출 여부를 모든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으면서 더 중요한 정신의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인 듯합니다. 특히 최근 새 정부 고위직 인선과정에서 알게 된 불편한 소식들은, 단지 한두 명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합의돼 있지 못함을, 그 헛헛한 진공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주주의 자본이익 창출이 기업의 절대소명이라고 앞장서서 말하던 경영학이, 기업의 목적은 사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의 창출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지금쯤, 우리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한번쯤 멈추어 생각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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