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많이 바꿨다, 하지만‥난, '福祉부동' 시장이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대담=아시아경제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서울시신청사 6층 시장실에서 박원순 시장(사진)은 온통 책들과 서류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보고받은 자료들에서 혹시 좋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놓치는 건 아닐까하는 마음에 파일을 정리하다 보니 책장과 책상 서류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그 책과 서류뭉치야말로 '박원순 서울시정'의 기획과 구상과 고민이 계속 성장ㆍ진화ㆍ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가 지난 1년여간 가져온 변화는 단지 몇 가지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나 양적인 변화를 넘어선 행정과 공공정책에 있어서의 전례없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지난 1일 집무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서관이며, 도시 혁신의 실험실이며, 작은 '만민공동회'의 마당에서 '원순씨'는 반짝반짝하는 눈망울로,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서울의 현재와 미래를 얘기했다. 600여년 전 정도전이 성리학적 질서와 민본 이념으로 한양을 건설하고 그 창도(創都)로써 새 나라 조선을 건국하고자 했다면 박 시장은 시민 속에서, 시민과 함께, 시민의 이름으로 서울의 혁신을 이루고, 서울의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을 갱생케 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 박시장이 시도하고 있는 창의 혁신 시정, 행정의 실질적 민주화는 제도 이상의 총체적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만 제대로 구현이 가능하다고 볼 때 형식화, 또다른 관료화에 갇혀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런 점들에 대해 어떻게 자평하며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서울시에 와서 보니까 공무원들이 세계적 도시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제가 비관료 출신이니까 비판적 시각으로 혁신할 부분이 있다. 특히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데 바로 그게 '거버넌스(협치)' 조직이다. 정책 입안에서부터 평가까지 이해관계자나 전문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예산제나 다양한 위원회, 민관 합동 회의, 토론회, 청책 숙의 등 다양한 형태로 경직되지 않고 유연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소통 채널을 열어놓았다는 측면에서 하나의 혁명이다. - 서울시에 많은 혁신과 변화를 가져왔지만 한편에선 좀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집중적으로 역량을 투입하고 싶은 분야는?▲처음 시장 되면서 '복지시장'이 되겠다고 했다. 경제 등 다른 영역과 달리 복지, 살의 질 분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한국이 최근 경제적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것은 삶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우울증과 불신이 많아지는 것이 성장의 잠재력을 잠식하고 있다. 삶의 질이 보장돼야 도약할 수 있다. 휴식하고 힐링해야 창조 도약의 힘이 생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설 연휴에도 휴가 충분히 찾아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복지는 사회적 낭비가 아니다. 복지가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고, 이것이 창조적 산업의 바탕이 된다. 대도시 서울의 숱한 문제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더러 당신 시장 하면서 뭐 했냐 물으면, 그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과거 시장들이 어느 한 쪽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분을 게을리하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적 물적 자원에 너무 집중하면 안된다. 시정의 정상화, 상식에 기초한 정상성을 회복하는 것, 시스템과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균일하게 성장해 가야한다.  -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 최근의 새로운 흐름은 이른바 국가-시장의 실패와 한계를 넘어서는 '중간경제'에 대한 모색이라고 본다. 서울시가 특히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올해 특히 어디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려고 하는가?▲실적과 수치 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형식적인 건 중요하지 않다. 실질적인 성장과 자립이 가능하도록 때로는 3년, 5년 계속 지원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발전단계에 맞는 실질적인 지원에 힘쓸 것이다. 아소카재단 등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국제기구도 유치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우리가 구매하는 게 또 중요하다. '책임조달시스템'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이왕이면 영세소기업, 사회적기업, 취약계층이 만들어내는 물품을 사도록 구매액 늘리려고 한다. 다만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는 공무원들이 주도하기보다는 중간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기업 개발센터나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사회투자기금 위탁 운영 등 처음에만 시에서 지원하고 민간 전문가들이 맡는 식으로 하고 있다. 
- 바람직한 행정은 시민의 참여와 대표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행정, '협치'의 실질화라고 본다. 그러나 위원회를 만들고 참여 채널을 만드는 걸 넘어서 실질적인 협치를 위한 시민의 능동성, 주체성 강화가 필요한데?▲협치의 실질화가 중요하다. 자기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풀뿌리 단체들이 많아져야 한다. 지역사회를 바꿀 수 있는 많은 자원, 방안들이 있다. 서울시는 어떻게 네트워킹 파트너십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애쓰고 있다. 사회적기업 개발센터, 마을공동체 지원 등이 그런 작업들이다. 시민들의 수준만큼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참여를 통해 의식이 강화된다. 시민참여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시민복지 기준선 정할 때 1000명이 모이는 라운드테이블 논의를 갖는 등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시민과 함께하려고 한다. 참여하면 달라진다. -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이 더욱 보수화돼서 서울시는 일종의 '섬'과도 같은 상황이 됐는데,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정치권 정당은 이념이 다르고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치단체라는 행정 영역에서는 보수와 진보 간에 별 차별성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내세우셨던 정책을 보니 제 정책을 가져간 게 많더라. 진보와 보수의 차이, 잘 모르겠다. 다만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선 전향적이고 진취적이고 공격적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이익,복리라면 무엇이든 저지를 생각이다. 보수나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 시민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좀 더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 좀 더 중점을 둘 수 있는데 내 사무실의 '기울어진 책장'이 상징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 박시장의 '유능한 민주적 리더십'을 보면서 지리멸렬한 민주당에 실망한 국민들은 야당 진영의 새로운 대안으로 기대하는 시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행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특히 서울시라는 어마어마한 하나의 공화국을 챙기려면 정당의 개혁이나 혁신에 참여할 여력이 없고,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당이나 진보세력 시민 전체에 보여드릴 선물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으로서 세계적으로 최고의 도시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야말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소문난 독서가로서 책 속에 미래가 있다고 믿는 박시장은 도서관 정책에도 많은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사실 진정한 도서관 정책이 그동안은 없었다"면서 "서울을 '걸어서 10분 안에 도서관'이 있는 도시로 만들려 하며 비좁은 서울도서관을 좀더 확충할 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틈날 때마다 읽는 책 중의 하나라는 '논어'에서 공자가 말했듯이 박 시장의 '발분망식(發憤忘食)'은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박원순 서울시장 프로필]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75년 서울대 사회과학계열 입학 및 제명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가게 총괄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대담 =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정리 = 오진희 기자 valere@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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