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고집스런 '박근혜 스타일'이 당선인을 해쳤다. 장애를 극복한 고위 관료 후보자의 입지전(立志傳)이 결국 새드 엔딩으로 끝났다. 땅 투기와 자녀의 병역 기피 의혹. 존경받던 노장의 민낯은 아름답지 않았다. 29일 지명 닷새만에 물러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예고된 비극이다. 새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가 사퇴한 건 헌정 사상 처음이다. 중대사를 홀로 정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폐쇄적인 리더십은 새 정부에 흠집을 냈다. 인수위원장을 겸한 김 후보자의 낙마로 정권 인수 작업도 주춤할 참이다. 취임식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달. 김 위원장은 이제 인수위에 남아도 떠나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 총리의 제청을 받아 뽑겠다던 장관 인선 스케줄도 줄줄이 밀리게 됐다. 당선인의 '함구령'에 침묵해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패닉 상태다. 김 후보자가 인수위원장직을 계속 맡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도덕성과 연륜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어온 김 위원장의 영이 서질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권 인수 작업이 반환점을 돌았지만, 도덕적 흠결로 총리 후보에서 물러난 분이 새 정부의 시작을 준비하는 조직을 이끄는 건 국민 감정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가에서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잇따랐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CBS라디오에 나와 "인사검증뿐 아니라 작년 대선 중반에도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느냐"면서 "비선조직, 가족 등의 의사에 의존해 결정하는 대통령은 100% 실패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대통령 취임식까지 끝내지 못하더라도 시간을 두고 (후속 인사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면서 "주요직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야당도 납득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30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ㆍ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도 당선인의 인선 스타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김용준 후보의 낙마가 주는 여러 교훈과 여파가 (추후 인선에)잘 반영되고 극복돼서 다시 새롭게 나아가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선인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도 "조속히 사퇴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오랜 인사 스타일을 쉽게 버리진 못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시선이다.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이 당선인에게 '충격요법'이 될 순 있겠지만, 천막당사 등 정치적 고비마다 내린 결단은 성공한 일이 훨씬 많았다"면서 "당선인의 수첩에서 또다른 인사가, 종전보다는 철저한 검증을 거쳐 발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선 실패에 대해 가상준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검증시스템이 촘촘해져 이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쥐긴 어려운 시대가 됐다"면서 "고위직에 오르려는 인사들에게 타산지석이 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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