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화상소녀’를 찾아주세요”

미군 참전용사 리차드 캐드월러더, “헬기로 수원서 부산까지 이송한 화상 입은 소녀 만나고 싶다”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 1953년 당시 리차드캐드월러더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6.25 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화상을 치료 받은 한 소녀를 참전미군이 찾고 있다.1953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수원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 통신병으로 근무한 참전용사 ‘리차드 캐드월러더’(Richard Cadwallader·82)씨가 6.25전쟁 때 자신의 도움으로 미군부대에서 화상치료를 받게 한 한국소녀를 찾아달라고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리차드는 수원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서해해안의 작은 미 공군부대에 배치 받았다. 배치 받은 부대엔 공군병사 서너 명과 의무관, 부대에서 일하던 한국소년 서너 명이 머물고 있었다. 한국소년 중 ‘에이스(Ace)’란 별명을 가진 아이는 미군 통역을 맡고 있었다. 1953년 어느 춥고 바람 부는 밤에 어떤 한국여성이 열 살쯤 돼 보이는 딸을 데리고 치료를 해달라고 찾아왔다. 어린 소녀는 집안일을 도우려고 불을 피우다 휘발유통이 터져 심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엄마와 딸은 이 부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집에서 5마일(약 8km)이나 떨어진 부대까지 걸어왔다.소녀에게 붙여져 있는 붕대를 걷어낸 군의관은 소녀가 얼굴 아래부터 목과 허리부분에 이르기까지 신체 전면부에 모두 심각한 화상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 3도 화상이었다. 리차드가 기억하기로 부대 군의관은 2시간 이상 걸려 소녀를 치료했다. 그 긴 시간 동안 한마디의 신음소리도 내지 않은 어린 소녀가 리처드에게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심한 고통을 불평 한마디 없이 조용히 견뎌내는 사람을 이제껏 본 적이 없었다. 소녀의 엄마는 딸이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계속 흐느꼈다. 군의관은 일주일 안에 딸을 다시 데려오라고 엄마에게 얘기했다. 엄마와 딸은 무섭도록 추운 그 밤에 다시 걸어서 5마일 떨어진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6주간 엄마와 딸은 치료를 받기 위해 매주 수요일 오후 5시에 정확히 도착했다. 매주 군의관은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바꾸고 페니실린을 놔주었다. 소녀의 상태는 좋아졌지만 감염부위를 완전히 치료하고 흉터와 얼굴추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더 나은 치료가 필요했다. 리차드는 이 소녀를 화상치료병동이 있던 부산MASH(육군이동외과병원)부대로 헬기까지 동원해 이송치료를 받게 했다.60년 전 일이지만 리차드는 그 어린 한국인소녀를 잊지 못했다. 1985년에 리차드를 대신해 그의 딸이 옛 한국소년 에이스를 수소문해 만났지만 어린 소녀는 찾지 못했다.리차드씨는 최근 국가보훈처에 이 소녀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국가보훈처는 리차드씨의 영상편지와 사연을 국가보훈처 신문, 방송 보도 및 홈페이지·온라인·광고캠페인을 통해 화상소녀를 알고 있는 국민들의 제보를 받을 계획이다.화상소녀를 찾게 되면 보훈처는 리차드씨를 올해 예정된 ‘UN참전용사 재방한행사’를 통해 공식초청해 60년 만에 만남을 주선키로 했다.(국가보훈처 통합콜센터 전화번호 1577-0606)이영철 기자 panpanyz@<ⓒ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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