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집을 집으로 이해하기

이필훈 포스코A&C 대표

'하우스푸어, 깡통주택', 아파트 가격이 폭락하면서 생기는 신조어들이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 가격의 50%가 넘는 융자를 끌어안은 일반 서민들은 매달 꼬박꼬박 돌아오는 이자와 원금을 부담하며 허리가 휜다. 그런데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니 매달 허공에다 돈을 날리는 것과 같다. 서민들에겐 아파트가 재테크의 전부였다. 부모의 영향으로 젊은이들도 같은 꿈을 좇는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변했다.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모든 선진국에서 부동산 특히 주거에 대한 투기의 허무한 끝자락이 보였다. '축 재개발허가 득.' 얼마 전까지도 시내 곳곳에서 보았던 현수막이다. "우리나라 외에 자신이 살던 집이 부서지는 것을 축하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오래된 건물에 애정이 깊었던 작고한 선배 건축가가 재개발을 보면서 했던 시니컬한 멘트다. 아파트는 하우징(housing)이라 부르는 주거건물의 한 형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연립주택도 주거의 형태들이다. 여행가서 며칠씩 묵는 호텔, 콘도도 주거건물이다. 요즘 1인가구를 담는 오피스텔과 고시원도 주거기능을 갖춘 건물들이다. 입고, 먹고, 자는 행위. 우리는 의식주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로 인식한다. 헌법에도 인간의 기본권을 이야기하며 거주이전의 자유와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거권에 대한 보장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주거가 부동산으로 그리고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건축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 주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택 안에 건축이 있는 상황이다. 행정기관인 국토해양부나 서울시도 주택국(실) 아래 건축과가 있다. 주택정책은 건강한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정책에 앞서 부동산 투기를 막는 정책으로 인식돼 왔다. 아파트 100만가구, 임대주택 100만가구를 짓겠다는 공약도 좋은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아파트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제 아파트를 '서민의 삶을 담는 가장 대중적인 주거공간'으로 바르게 인식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삶에 맞는 음식, 옷, 차를 선택하듯 주거도 현재의 삶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면 된다. 아파트로 고통받는 서민들도 있지만 더 많은 서민들에겐 주거에 대한 접근 기회가 다양해진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아파트에 대한 투기성 기대를 접으면 훨씬 다양한 방식의 주거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똑같은 형식의 공간에 그렇게 오래 머물 필요도 없고, 한 장소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저명한 사회비평가이자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인 '소유의 종말'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세대의 몰락과 접속에 능한 세대의 탄생을 예견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뿐인 세상에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퇴물이 된다…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 터진 생각이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경제활동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다.' 리프킨의 예언이 우리나라의 주거문화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은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아파트가 오래된 아파트보다 훨씬 편리하고 아름답기에 비싸고, 보보스라고 불리는 젊은 부자들이 새로 지은 주거로 옮겨 다니는 트렌드는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집을 부동산, 투기대상이 아닌 내가 살 집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불황의 타개방법 중 '기본에 충실할 것'은 늘 통하는 이야기다. '집을 집으로 이해하기' 역시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아파트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자세다.이필훈 포스코A&C 대표<ⓒ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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