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부상하는 군 축구의 힘

지난 24일 점심 무렵 서울역 앞 조그만 식당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중, 후반의 남성 20여명이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흔히 볼 수 송년회 자리였지만 모임은 조금 특이했다. 20대 초반의 혈기 왕성했던 시절 내무반에서 길게는 2년 정도, 짧게는 6개월여 함께 생활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대구, 울산, 포항, 전주 등 전국에서 먼 길을 마다 않고 모였다. 글쓴이를 비롯해 이 자리에 모인 예비역 병장들은 30여 년 전 서부 전선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했다. 부대는 후방에서 6주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이등병을 받아 4주 동안 주특기 교육을 한 뒤 예하 연대로 보냈다. 한 기수에 200여명을 받았는데 신기할 정도로 기수마다 수준급 축구팀을 꾸릴 수 있었다. 실력 있는 신병 팀과 꾸준히 경기를 하다 보니 조교 팀의 실력은 자연스럽게 늘었다. 그래서 부대 인근 지역 팀들과 친선경기도 했다. 부대가 주둔한 지역은 국가 대표선수를 배출한, 전국적으로 축구 실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곳이다.이날 모임에서도 단연 화제는 축구였다. 축구 명문 경신고를 졸업한 유○○ 병장은 자기가 차범근이라도 된 양 연병장을 날아다녔다는 등의 이야기를 입에 침을 튀기며 했다. 여성들이 가장 싫어 한다는 ‘군대+축구’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일반 사병뿐 아니라 군대와 우리나라 축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뒤 곧이어 일어난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혼란스러운 시기에 군은 스포츠 발전에 한몫을 했다. 특히 축구가 그랬다. 육군본부와 해군본부는 1948년 이미 축구부를 보유하고 있었다. 1949년에는 9개 팀이 출전한 사단 대항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때는 한국전쟁 전이어서 국군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때였다. 한국전쟁의 포연이 자욱했던 1951년 10월 경남 밀양에서 개최된 전국선수권대회에는 헌병사령부와 공군, 해군, 육군보병학교 등의 군 팀과 조선방직과 대구방직, 한국모직 등 실업팀이 자웅을 겨뤘다. 한국전쟁 뒤인 1955년 9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선수권대회 출전 팀을 살펴보면 이 시기 한국 축구에서 군이 차지했던 비중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6개 출전 팀 가운데 군 팀은 병참단과 통신대, 해군, 22사단, 제7피복창, 해병대, 첩보대, 수도사단, 헌병사령부, 특무대, 1101공병단, 공군 등 12개나 됐다. 1956년 육군본부가 주최한 육군대회에는 사단 단위로 16개 팀이 출전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1960년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축구 대학부에서는 공군사관학교가 우승했다. 이 무렵 3군사관학교는 축구, 럭비 등 자체 대회를 갖고 각종 국내 대회에도 출전하는 등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1965년 4월 방첩대의 해체는 군 축구가 한국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였다. 한국전쟁 와중인 1951년 특무대라는 이름으로 축구부를 만든 방첩대는 이후 14년여 동안 40명이 넘는 국가 대표 선수를 배출하는 등 축구 발전에 이바지했으나 단위 부대가 축구부를 운용하기에는 국내 축구의 판이 많이 커져 있었다. 프로 출범 전인 1974년 한국실업축구연맹 가맹 팀은 한전, 자동차보험, 포철, 기업은행, 조흥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주택은행, 신탁은행, 산업은행, 상업은행, 서울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 농협, 철도청 그리고 육군과 해군, 공군 등 19개 팀이었다. 추억의 은행 이름이 여럿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 무렵 축구는 금융단이 이끌고 있었다. 군 축구의 퇴조가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1984년 국군체육부대가 창설되기 전까지 3군은 각자 축구부를 운용하며 변함없이 한국 축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연세대 출신의 허정무와 고려대를 나온 차범근을 해병대(해군)와 공군이 경쟁적으로 영입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3군의 축구 사랑은 각별했다. 특히 허정무는 1979년 3월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대통령배대회에서 해병대를 우승으로 이끌고 자신은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내년에 시작하는 프로축구 2부 리그에 참가할 예정인 국군체육부대(상주 상무)와 경찰청이 국가대표 급 전력을 갖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른 군 축구에 대한 추억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찰청은 군 팀이 아니다. 하지만 병역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단했단 점에서 군팀에 준한다고 할 수 있다. 프로야구 2군(퓨처스 리그) 북부리그 상무와 경찰청의 라이벌전에 이은 또 하나의 볼거리가 스포츠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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