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물체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데는 힘이 별로 들지 않지만, 멈춘 물체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면 힘이 많이 든다. 관성의 법칙이다. 경제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경기순환에 따른 하락 이상 큰 폭으로 떨어진 성장속도는 다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저성장이 오래 계속되면 경제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고, 그러면 잠재성장률 이하 저성장과 고실업이 고착화한다는 이론도 있다. 성장의 이력이 경제심리를 통해 미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력효과(履歷效果)론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3분기 경제성장률이 1년 전에 비해 1.6%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분기 이후 3년 만의 최저다. 직전 분기 대비로는 0.2%로, 2011년 2분기부터 6분기 연속 1%에도 못 미쳤다. 한국은행이 분기별 성장률을 집계하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장 기간 1% 미만 행진이다. 성장능력 추정치인 잠재성장률 하락도 계속되고 있다. 1970년대에 7%대였던 잠재성장률은 이제 3%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5~6년 뒤에는 2%대 중반까지로 더 떨어질 것으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전망했다. 저성장 흐름으로 인해 경제가 '2만달러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7년에 처음 2만달러를 넘은 뒤로 5년 동안 2만3000달러 이하에 머물고 있다'며 '이런 상태에서 지금과 같은 저성장이 계속된다면 3만달러를 넘는 데 앞으로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관료들도 이런 비관론에 사로잡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저성장의 장기지속을 전제로 아예 '재정정책 무용론'을 내세우며 '중장기 대책'만 강조한다. 다음 정권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주요 대선후보들도 '성장'이라는 말은 하지만 기대를 걸어볼 만큼 짜임새 있고 구체적인 성장의 전략과 계획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 국민이 되지 못했고, 복지국가는 시도해 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여기서 '저성장을 피할 수 없다'며 패배주의에 빠질 수는 없다.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잠재성장률 언저리의 성장은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이력효과의 덫에 안 걸리고, 잠재성장률 급추락을 막을 수 있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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