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조민수, '나는 늘 거기에 있었다'

'영광의 순간' 누린 26년 관록의 여배우, 조민수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친숙함 속에서 돌출하는 의외성은 낯선 조우보다 매력적이다. '피에타'의 조민수가 그랬다. 데뷔 26년차로 불혹을 넘긴 여배우, 드라마의 '엄마'가 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돌파해보인 조민수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조민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잊혀진 것도 아니고 (연기를)안 한 것도 아니다. 난 늘 거기 있었다." 2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민수는 미래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난 계속 지금처럼 할 거다. '피에타'도 좋아서 선택했을 뿐 이렇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었다. 앞으로 내 역할이 달라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생각은 없다.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을 뿐이다." '무엇을 하든 장인이 될 만한 시간'을 보내 온 조민수의 관록은 예상보다 단단했다.

'피에타'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가능성의 모색이었다. "내가 하는 연기가 재미없고 같은 걸 반복해야 하는 나이대다. 내가 갖고 있는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내 안에는 다른 것도 있는데." 처음에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출연을 거절했다.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었다. 사람도 불편할 것 같았다. 우선은 가부 결정을 떠나 현장에서 김 감독을 먼저 만나보겠다고 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맑게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대본 속 불편한 부분은 표현을 못 하겠다고 말씀드리자 흔쾌히 맞춰주고 대본을 수정해주시더라."마침 촬영중이던 드라마와 '피에타'의 초반 촬영이 겹쳤다. 그래도 출연을 결정했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몸에 익은 연기였다. 그렇지만 '피에타'에서의 역은 전혀 다른 캐릭터에 다른 색깔이어서 욕심이 났다. 촬영 현장에만 가면 신이 났다. 늦게 찍어도 에너지가 넘쳤다." 그러나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배우와 감독 사이에서는 영화를 각자의 방식으로 완성해가기 위한 '무언의 혈투'가 벌어졌다. "김 감독은 연기자를 기다려주는 타입이 아니다. 현장은 무조건 원테이크다. 두세번 요구해서 안 되면 딱 접어버린다. 호흡이 너무 빨라서 연기자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바짝 정신 안 차리면 내 것 다 놓치겠다 싶었다. 그 분은 그 분 작품일지 몰라도 내겐 내 작품이니까." 캐릭터에 대한 접근도 조민수는 본인의 시각을 고수했다. "난 '피에타'를 모성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대본에도 '엄마'로 돼 있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는 상대에게 가장 접근하기 좋고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명사이기에 사용했을 뿐, 나는 (내 역할을)여자로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긴장은 한편으론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한꺼번에 에너지를 쏟아내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배우로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던 베니스에서의 영광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조민수는 "여우주연상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장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상에 있던 심사위원 중 영국 배우 사만다 모튼이 날 붙잡는데 그 눈빛을 알겠더라. 다른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의 눈빛도...난 그 무대에서 상을 받은 거다." 사만다 모튼은 조민수의 연기를 두고 "내 인생을 바꿔놓은 감동적인 연기"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26년간 배우로 살아온 삶에 기복도 있었다. 그만큼 '거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코카콜라 나왔다가 펩시콜라 나오면 갑자기 펩시콜라로 확 몰린다. 부정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거품이란 걸 잘 안다." 차기작도 좋은 작품을 만날 때까지 천천히 갈 계획이다. "김 감독이 차기작 같이 하자길래 대본도 안 본다고 했다. 지금은 날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조민수는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과 쏟아진 격찬을 '살면서 너무 큰 추억거리 중 하나'로 불렀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내 상품가치가 좀 올라왔구나. 내 또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선착순이 빨리 오겠지, 이런 생각 정도다." 어쨌든 '피에타'는 처음 바람대로 가능성의 문을 열여줬다. 지금껏 영화로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고참 여배우로 김해숙, 조여정 등의 재발견이 이어졌다. 이제 조민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17년만의 영화 출연작에 이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조민수는 경험 속에서 답을 찾았다. '욕망의 문' 등의 드라마를 같이 했던 작가 김기팔이 첫번째였다. "내가 화장품 모델로 광고에 출연하던 신인일 때 김기팔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카메라 쳐다보면서 예쁜 척 하지 말라고. 그건 정답이었다." 2004년 세상을 뜬 배우 김순철에게서는 배우로서의 '기본 자세'를 배웠다. "김순철 선생님은 현장에 들어갈 때 대본을 갖고 오시는 법이 없었다. 어렸을 땐 그게 너무 신기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공간 안에 대본을 어떻게 갖고 들어오냐며 그게 기본이라고 하시더라." 최근 드라마 '추적자'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인 배우 박근형은 조민수가 꼽는 이상적인 선배다. "그 분의 눈빛과 연기로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감정이 나왔다. 배우는 정말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나중에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로 남고 싶다고 생각한다." 너무 늦게 찾아 온 '전성기'일까. 조민수는 고개를 저었다. "'잔잔한 바다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 수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배우로도, 현실을 살아가는 나로서도 지금껏 순탄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 시간이 쌓여 '피에타'의 연기가 나왔다." 조민수는 "조금 더 어렸을 때였다면 흉내만 내다 끝났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점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수진 기자 sj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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