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배추밭 현장… '여름 배추, 제 값에 사주세요'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해발 1200m 한낮 기온도 17도를 넘기지 않는 강원도 강릉 의 안반덕 마을. 트럭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좁은 비탈길 위에 새파란 고랭지 배추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183ha의 밭에서 전국 여름 배추의 2.5%를 생산하는 곳이다. 부슬비에 날개미 떼가 부유하던 4일 오후에도 현장에선 서울 가락동 시장으로 올려보낼 배추 수확이 한창이었다. 잇따라 태풍이 찾아온 게 불과 한 주 전. 볼라벤과 덴빈이 남긴 상흔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군데 군데 흑색심부병으로 속이 썩은 배추가 있었지만 출하에 문제가 없는 건강한 배추가 대부분이었다.
박병승 대관령원예농협 조합장은 "태풍으로 비가 많이 내린 다음 기온이 오르다보니 속이 물러 못쓰게 된 배추가 좀 있지만, 안반덕 지역은 올해 풍작이라 9월 상순 출하분이 20% 남짓 줄어드는 것 외에 수급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수 강원도 농정국장도 "가뭄에 고온 이어 비 피해를 입다보니 일부 작물이 상했다"면서도 "강원도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9월 상순 출하분이 평년보다 30~40% 정도 줄겠지만 중순과 하순으로 가면 출하량이 회복돼 수급 문제나 급격한 가격 상승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현장의 고민은 가격이다. 궂은 날씨로 일부 손실을 봤지만 올해 여름 배추 농사는 풍년이다. 지난 주말 가락시장에 내보낸 안반덕의 여름 배추는 3개들이 1망당 8500원에 팔려 나갔다. 농협은 계약재배한 배추 1망에 9000원씩을 쳐주지만 안반덕 고랭지 배추 중 25%만 이런 대접을 받는다. 나머지는 파종 단계에서 계약이 끝나는 밭떼기 물량이다. 안반덕 배추 농가들은 "1포기에 3000원꼴인 경락가격이 적어도 4000원은 돼야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여름 배추는 비료를 많이 먹는다. 수확할 땐 일일이 사람 손이 닿아야 한다. 이 지역은 경사가 가팔라 수확한 배추를 트럭에 실을 때도 포클레인이 필요하다. 모두 생산비를 끌어올리는 요인들이다. 김치냉장고가 보급돼 수요가 주는 것도 고민거리다. 김치를 싱싱하게 오래 저장해 먹을 수 있으니 새 김치를 담그는 빈도가 줄었다. 박 조합장은 "겨울 작물인 배추를 여름에 드시려면 높은 생산비가 든다는 점, 그래서 적정 가격을 지불해야 좋은 상품을 드실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들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팍팍한 경제여건이다. 소득 수준은 그대로인데 장바구니 물가는 오름세다.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 건진다며 푸념하지만 8월 통계청이 집계한 배추 시세는 한 달 만에 15.7%나 올랐다. 추석 수요를 고려하면 이달 시세는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농심(農心)과 소비자 사이에서 고심 중인 정부에도 뾰족한 대책은 없다. 배추밭에 간 신제윤 기획재정부 1차관은 "농민들의 땀과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배추를 먹겠다"는 말로 현장의 목소리에 답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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