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바이올린, 지독하면서도 자유로운 인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정경화가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잡은 것은 6살때 부터다. 4살때 피아노를 배우다 본인의 의지로 바이올린으로 바꿨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처음에는 피아노만 배우면 맨날 졸았다. 그러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됐는데, 자유로운 느낌이 너무 좋았다. 피아노는 너무 커서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바이올린은 손에 들어오고, 처음부터 좋았다."'바이올린의 여제'의 시작은 단순했지만, 과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1960년 12살의 나이로 미국에 건너가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했으며, 1967년 카네기 홀에서 열린 리벤트리트 콩쿠르에 출전해 핑카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했다. 1970년에는 정확하면서도 열정적인 무대로 호평을 받으며 유럽 무대에 데뷔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우리에게는 언니인 정명화(첼리스트), 동생 정명훈(피아니스트 겸 지휘자)과 함께 '정트리오'로 유명하다.그러다 왼손 손가락 인대에 부상을 입은 게 2005년의 일이다. 이제 막 키로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었지만 손가락 통증으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어깨에도 이상이 있어 연주가로서의 생명에는 치명적이었다. 이후 활을 놓은 게 5년이다. 슬럼프라면 슬럼프라고 할 수 있는 이 기간을 정경화는 오히려 담담하게 회상한다."부상을 입고 난 후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내 손을 어느 과정에 들어가게 하셨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내 의무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태 해보진 않았지만,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게 내 의무인가 해서 굉장히 열심히 가르쳤다. 또 나는 가정도 있고, 엄마로서의 생활도 해왔기 때문에 연주를 안한다고 실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그렇게 공백의 시간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른 게 지난해부터다. 지난 5월에는 명동성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꿈의 곡'인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성공적으로 올렸다. 특히 오랜 부상을 딛은 터라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정경화는 "바흐 같이 인간적으로, 영적으로 완벽한 작곡가는 없다"며 "그날의 공연은 몇 십년만의 나의 꿈을 이룬 것이며,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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