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자리 없는 헌책방, 손님들까지 변해 '쓸쓸'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서울 신촌역 인근의 한 도로변. 인도를 향해 진열해 놓은 낡은 잡지와 만화책 꾸러미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부로 들어가니 옛 레코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방으로 책이 둘러져 있어 독서광의 아지트 같은 곳. '공씨책방'의 첫인상이다.'공씨책방'이 이곳 창천동에 자리 잡은 게 벌써 20년 전이다. 오프라인 서점들의 몰락과 더불어 헌책방 역시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공씨책방'은 80년대 회기동과 광화문 시절을 거쳐 3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30년째 책방의 운영을 돕고 있는 최성장(67세·여)씨는 창업주인 고(故) 공진석씨의 처제다. 그는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 볼거리가 너무나 많잖아. 동네책방에서 책 사는 사람도 줄었고 여기도 주로 단골손님들이 찾아와"라고 말했다.가게를 둘러보니 15평 남짓한 공간에 그 흔한 CCTV 하나 없다. 최씨는 "옛날엔 책도둑은 도둑으로도 생각 안했으니까 감시 같은 건 아예 할 생각도 안했지. 요즘은 다른 곳들도 죄다 CCTV 달고 한다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라고 이유를 설명했다.최씨는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책방은 싫다고 말한다. 카운터에 지키고 서서 손님이 책을 가져오면 바코드를 찍고 계산이 끝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곳 말이다. 책들은 대부분 가격이 연필로 써져 있고, 대강의 분류는 있지만 정확히 가나다라 순으로 진열돼 있지도 않다.가게 구석진 곳에는 오래된 레코드판이 빼곡히 채워진 책장이 놓여 있고 이제는 구할 수 없는 CD음반과 낡은 카세트테이프들도 판매되고 있다. 50~60년대 영화음악부터 70년대 국내가요들까지. 보기만 해도 애잔한 세월이 느껴져 뭘 하나 사려해도 한참을 뜸을 들이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넉넉한 마음가짐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최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손님들과의 사이에 끈끈한 소통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 그로서는 무척이나 적적한 일이 돼버렸다. 대형 온라인 서점들에 중고 코너가 생긴 이후론 헌책방들도 하나 둘씩 온라인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고, 손님 중엔 그곳에 유통시키기 위한 책들을 사러 오는 이들이 늘었다.최씨는 "큰 가방을 들고 와서는 만화나 절판된 시집 등 희귀하거나 돈이 된다 싶은 책들만 쏙쏙 골라 싹쓸이해가는 손님들이 있어. 아마 온라인 중고서적 코너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되팔려는 거겠지. 예전엔 단지 책을 좋아하거나 자기가 읽으려고 사는 손님들이 많았는데.."라고 아쉬워했다.이 때문인지 최씨는 도통 자리를 떠날 줄 모르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주는 법이 없다. 한참이나 눌러 있다가 결국 빈손으로 문을 나서는 이나 한꺼번에 수십 권의 책을 사가는 손님이나 그에겐 일반이다.최씨는 "편한 것을 쫓는 걸 말릴 순 없지. 인터넷에서 주문만 하면 뚝딱 배달되는 세상인 걸. 다만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들. 그런 스토리가 사라지는 게 짠해"라며 못내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장인서 기자 en1302@<ⓒ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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