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지난 노력을 떠올리면 최악의 하루였다. 은메달은 그래서 더 값졌다. 온갖 악조건을 딛고 얻은 기적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박태환은 29일 오전(한국시각) 영국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선에서 3분42초06만에 터치패드를 찍으며 2위로 골인했다. 중반까진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300m 지점부터 스퍼트를 올린 쑨양(중국, 3분40초14)에 추격을 허용했고 은메달을 획득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값진 성과였다. 박태환은 제대로 결선을 준비할 수 없었다. 애매한 판정에 발목을 잡혔다. 박태환은 앞서 열린 예선 3조 경기에서 3분46초68만에 터치패드를 찍으며 조 1위로 골인했다. 그러나 이어진 공식기록에서 이름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스타트 문제로 실격(DSQ, disqualified) 처리됐다. 출발은 문제가 아니었다. 박태환은 0.63초의 스타트 반응을 보였다. 문제는 출발 전 정지 자세. 출발심판인 폴 매몬트는 박태환이 몸을 조금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출발구령을 기다리는 준비 자세에서 어깨에 미동이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박태환은 어리둥절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레이스에 문제는 없었다”라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마이클 볼 전담코치와 대한체육회, 대한수영연맹은 서둘러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고 국제수영연맹(FINA)에 재심을 요청했다. 그리고 3시간여 기다림 끝에 FINA로부터 판정 번복을 통보받았다. FINA가 판정을 뒤엎은 건 25년여 만이었다. 그간 많은 선수들이 이의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FINA가 결정을 달리 했을 만큼 판정은 수준 이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결선 티켓. 하지만 소식을 접한 건 컨디션이 엉망이 된 이후였다. 세계기록, 쑨양, 유럽 징크스 등의 부담을 넘기도 힘들었던 박태환에게 3시간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경기를 나설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 페이스는 점점 내리막을 걸었다. 다시 찾은 수영장에서 그간 준비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박태환은 초반 무섭게 역영을 펼쳤다. 세계 최고의 물개들 가운데서 일찌감치 선두로 치고 나섰다. 오버 페이스였다. 계획대로라면 박태환은 350m 지점부터 스퍼트를 바짝 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막판 스퍼트를 올린 쑨양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미 300m 지점까지 전력을 쏟은 탓에 가속도를 붙일 힘이 없었다. 분노의 질주로 생긴 폐해였다.유럽 징크스는 그렇게 다시 불거졌다. 박태환은 중학생 신분으로 출전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준비를 출발 신호로 착각해 실격했다. 3년 전 로마 세계선수권에서는 준비 부족으로 쓴잔을 들이켰다. 박태환은 이번만은 다르다고 여겼다. 철저하게 준비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세계기록도 넘봤다. 경기 뒤 박태환은 눈물을 흘렸다. 당연한 반응. 하지만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다.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들이 주로 거론하는 “죄송하다”라는 말은 더더욱 불필요하다. 박태환은 험난한 장애에도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2회 연속 메달 획득에 건재함마저 세계만방에 알렸다. 역사는 메달과 기록만으로 작성되지 않는다. 대중의 기억으로 더 오래 기억된다. 400m 레이스에서 박태환은 용감하고 씩씩했다. 그리고 충분히 잘 싸웠다. 1만 명도 되지 않는 수영 인구의 대한민국에서 ‘마린보이’라 불릴 만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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