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대학을 가다 | 실업의 늪에서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
실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해야 하는’ 취업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을 하겠노라며 전문직 도전에 나선 그들을 직업교육의 요람, 한국폴리텍대학에서 만났다.학교에 오게 된 절박하고 간절한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희망을 품고 있어서인지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지난 25일 인천시 남구의 한국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를 방문, 실업의 늪에서 재기를 꿈꾸는 황인찬(27), 김재은(24), 유연숙(41), 이진백(54), 진영환(56) 씨를 만나 그들의 고군분투 전문직 도전기를 들어봤다.김재은 관광학을 전공하고 스튜어디스로 취직하거나 호텔리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노력과는 상관없이 150cm대의 작은 키로는 어림없더라고요. 처음 맛본 좌절이었습니다. 상실감이 컸습니다. 목표가 없어지니까 다른 일도 꾸준히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규모가 큰 투어 회사에 들어갈까 했지만 경쟁률이 너무 높아 취업이 힘들었고요.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놀고 있을 순 없잖아요. 케이크 커팅이나 관광업체 사무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근히 생각해 봤어요.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어떤 것이든 관찰하고 혼자 만들어 보길 좋아하는 적성을 고려해 전망이 좋다는 전자 분야 쪽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향후 진로요? LED 전자학과 졸업 후, 로봇에 들어가는 동작 가능한 회로 개발을 할 거예요. 이 일을 하고 있을 제 모습을 상상해 보면 너무 즐겁답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황인찬 육군부사관 4년 만기 제대를 했어요. 장기근무 심사에 통과해서 부사관으로 정년까지 근무하고 싶었죠. 6년까지 근무해야 장기심사 자격이 갖춰지는데 만약 떨어지면 1년 연장 근무해서 다시 심사에 지원해야 해요. 또 떨어지면 다시 연장근무를 해야 하고…. 잘못하다가는 시간만 낭비할 수 있겠다 싶었죠. 빨리 결단을 내려 아예 접고 나와 구직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20대 초반에 산업기사 자격을 따 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자격증도 없고 경력도 없어서 잇따라 취업에 실패했죠. 금속 분야 교육을 알아주는 곳이 한국폴리텍대학이더라고요. 전문 기술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중장년층, 나이가 재취업 큰 걸림돌 아무래도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층에게는 부족한 경력, 뚜렷한 목표 부재 등으로 몸살을 앓는 모양이었다. 중장년층의 경우는 경력단절, 많은 나이가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해 재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유연숙 전직은 유치원 교사예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1남 2녀의 자녀를 키우는 데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 다시 일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오고 보니 딱 자리 잡고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이 없었어요. 공장에서의 빵 포장, 대형마트 판매업, 휴대전화 회사 사무일, 유치원 강사 등 안 해본 게 없었죠. 결국 남편과 함께 LED 분야에서 창업하기로 하고 올 3월 LED 응용전자과에 들어왔습니다. 고등학교로 돌아간 거나 다름없이 1~8교시까지 수업이 일정이 빡빡하고 과제도 매우 많아요. 젊은 아이들하고 같이 배우는데 혼자 뒤처지면 창피하잖아요. 악착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엔 어느 나라 말인가 싶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지금은 회로도 꾸미는 일에 흥미를 붙여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요. 전자캐드 자격증도 벌써 땄고요.이진백 외국 항공사에서 경리 총무부장을 했는데 회사가 미국에서 인수합병이 되는 바람에 작년 11월, 원치 않는 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실직 후 수입이 끊겨 가진 재산 허물고 대출받아 빚까지 지게 되고…. 가정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았어요. 일자리가 절실했습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재직할 때 월 급여가 34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한 달 120만원 정도의 실업급여를 타고 있어 생계유지비로는 턱없이 부족하죠. 정말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있는데 ‘고급직급에 있었으니까 험한 일은 안 하는 거 아니냐’ ‘단순 노무직이라도 해야 하는데 자존심 때문에 하지 않는 거냐’는 눈총을 받을 때는 속상하더라고요. 일이 없어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부부간에도 마찰이 잦고요. 구직하는 데도 나이가 계속 걸림돌이 돼 힘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30여 군데 지원해봤고 면접 본 곳도 15군데나 돼요. 연락 오는 데라곤 다 영업직에 외판원이에요. 공기청정기 판매교육을 한 달 받으면 지사장을 시켜준다는 다단계 판매 업체도 있었어요. 기술이 없어서는 하위직밖에는 못 하는 현실인 거죠. 노동부에서 추천받아 이 학교의 전기설비과 실업자 무료 국비과정을 들었습니다. 이젠 기술이 있기 때문에 곧 취직되리라 믿고 있어요.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진영환 대출 빚이 많아서 일부 갚는 문제 때문에 명예퇴직을 하게 됐어요. 중등교원 출신이라서 연금은 받지만 빚이 너무 많아서 일자리가 급한 상황이었어요. 대형마트 실버 사원에도 지원을 했거든요? 그런데 대기업 간부 출신 시니어들이 수백명, 석사 이상 고급인력들이 수십명 몰렸더이다. 경쟁률이 무척 높았고 저는 떨어졌죠. 지난해 10월까지 줄기차게 이력서를 냈는데 한 곳도 불러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나이가 많은 게 죄인가요? 서럽네요. 게다가 아내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짜증을 내니 스트레스는 받지만 뭐, 어떡하겠어요. 그러려니 하고 지내야죠.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새로운 기술을 익혀 오래 일할 수 있는 걸 찾자!”라고 결심하고 여기서 3개월 실직자 취업과정을 최근 마쳤어요. 좋은 시설에서 무료 교육을 받고 한 달 교통비로 5만원씩 받으며 공부하니 좋네요. 교수님들도 학생별 맞춤형 강의를 하고요. 현재 전기기능사 시험을 봐서 필기에 합격한 상태에요. 실기 연습에 매진해 기능사 자격을 획득하는 게 첫째 목표입니다. 다음엔 전기기사 자격증을 딸 거예요.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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