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
개전 초기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용전분투한 L-5연락기와 함께한 공군사관학교 장병ㆍ생도들.[사진=공군]
6.25전쟁 직전 해군은 불과 33척의 함정만 보유하고 있었다. 33척의 함정은 소해정 26척, 수송선 2척, 유조선 1척, 연안 경비정 2척 등이었다. 전쟁중에 구잠함과 소해정을 중심으로 4개 정대를 편성했다.전쟁도중 병력과 장비를 보충해 휴전당시에는 6개 전대를 만들었다. 병력도 개전 초기 5700여명에서 1953년도 말에는 1만 5000여명으로 증강됐다. 그러나 해군은 전쟁 중 전사상자 1200여명과 함정 5척이 손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침몰한 함정은 삼척근해에서 미 구축함의 오인사격으로 침몰한 AMC-305호(1950년 6월 29일.전사 8명), 영덕 동방해상에서 북한군의 기뢰에 접촉해 침몰한 YMS-509(1950년 9월 28일.전사 25명), 원산항 입구에서 침몰한 YMS-516호(1950년 10월 18일.전사 15명), 서해 석도 근해에서 북한군의 기뢰에 접촉해 침몰한 AMC-306(1951년 5월 5일.전사 1명), 원산 근해 작전중 북한군의 기뢰에 접촉해 침몰한 PC-704(1951년 12월 26일.전사 57명)이다.기뢰에 접촉해 기관이 파괴됐으나 수리해 병원선으로 사용한 영등포함과 태풍으로 좌초된 LST-803도 있다. 1952년 5월 21일에는 함정 PF-62호가 미국 수송함과 충돌해 선체가 파괴되기도 했다. 6.25전쟁의 대한해협해전 승리의 주역인 백두산함(PC-701)의 돛대만 해군사관학교에서 보관중이다. 현재까지 국내 보관중인 해군의 유일한 함정이다. 이외에 대부분의 함정들은 퇴역후에 해체되거나 사격 목표로 사용되는 것을 그 생을 마감했다. 어뢰정인 PT-25는 존F.케네디 대통령 기념관에 전시하기 위해 1969년 미국으로 반환된 상태다.우리 공군 최초의 수송기이자 대통령 전용기로도 활용됐던 C-47 앞에 공군15혼성비행단 255대대 C-130 수송기 조종사들이 섰다. [사진=공군]<br />
6.25전쟁때 사용했던 무기체계를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는 것은 육군이다. 육군의 경우 개인장비를 중심으로 야포와 수송차량들이 주로 남아 있다. 6.25전쟁발발 직전 육군은 보병 8개사단과 2개 독립연대를 주축으로 총병력 9만여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 3년간의 전쟁기간을 거치면서 각급부대의 증설 및 창설로 휴전당시 3개군단, 18개 사단으로 성장한다. 병력도 55만 여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전쟁기간중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전사상자가 무려 60여 만 명에 이른다. 전투병 13만 3016명이 숨졌고 비전투병 2842명이 목숨을 잃었다. 실종과 부상자를 합친 인명피해는 전투병37만 746명명, 비전투병 22만 8067명에 이른다. 부상으로 전투가 불가능해 제대한 의병제대자도 많았다. 사병이 6만 6923명, 장교가 376명이었다.장비와 물자손실도 매어 컸다. 전쟁기간중 카빈소총 3만8333정, M1소총 8만 5560정, 기관총류 3419정, 로켓포류 2761정, 박격포류 1572문, 곡사포류 181문, 무반동총 160정이 파손됐다.공군3훈련비행단 교육생들이 6·25전쟁 직전 국민 성금으로 구매했던 T-6 훈련기 앞에서 선배 조종사들처럼 비행기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공군]
양낙규 기자 if@<ⓒ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