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전대미문의 전쟁이다. 글로벌 기업史에 유례 없는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아직은 징후에 가깝다. 무릇 전쟁은 싸우기 전에 이미 승패가 나 있다. 전쟁은 형식에 불과하다. 그래서 병법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승리로 꼽는다. 병참, 전쟁비용, 군사력, 국민적 단결력, 군사들의 사기, 전략 등 싸움에 필요한 요소들을 다 모아 시물레이션을 해 보면 전쟁 결과는 전쟁 이전에 결론지어져 있다. '장갑을 벗어봐야 된다고 ?' 하수들이나 싸워 봐야 승부를 안다. 그런데도 지금의 싸움은 아무도 모른다. 그만큼 복잡하며 드러난 현상만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전쟁 이후 누가 어느 정도의 전리품을 챙길 지도 가늠할 수 없다. 벌써부터 유혈이 낭자하고, 시신이 즐비하다. ◆ 삼성-애플 대전을 바라보는 몇가지 오해 바로 '애플과 삼성의 전쟁'이다. 이 전쟁의 일반적인 관전자들은 몇가지 오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전문적인 식격을 가진 사람들조차 애플이 개전하고, 삼성이 확전시킨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삼성은 늘 수세적인 입장이라고. 이는 맞으면서도 틀린 말이다. 삼성에게 있어 애플은 제일 '큰 손'이다. 삼성이 애플에 파는 비메모리 반도체 등 IT부품은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래서 부품으로 공생하고, 완성품으로 경쟁하는 관계처럼 놓여 있다. 때문에 삼성은 '공생과 경쟁'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게 첫번째 오해다. 두번째 오해는 맞대응하는 삼성의 전략이다. 전략가 이건희 회장조차 "못이 나오면 때리려는 원리"로 애플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의아한 대목이다. 또 "애플만 아니라 우리와 관계 없는, 전자회사가 아닌 기업까지도 삼성을 견제하고 있다"고 보는 의견도 그렇다. 특허에 있어서 애플은 삼성의 상대가 아니다. 다른 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삼성은 확전을 통해 특허 강자로서의 위치를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여겼을 수도 있다. 애플은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기술과 디자인, 사용자 환경, 포장까지 베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삼성은 애플과의 전장(戰場)을 미주, 유럽, 호주 등 세계 곳곳으로 넓혔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튀어나온 못을 때리는' 것처럼 우호적이지 않은 기업을 견제, 압박해야한다고 보는게 또다른 오해다. 오해는 또 있다. 팀쿡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팀쿡은 성향상 잡스처럼 독설가도 아니고, 갈등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친하고, 우리와도 스킨십이 많아 지한파로 이해한다. 따라서 협상이 가능하다는 견해다. 참으로 한가하고도 객적은 소리다. 글로벌 전쟁에서 친분은 종잇장보다 얄팍하다. 또한 싸우던 사람들을 화해시켜 평화로운 세계로 이끌 것이라는건 망상이다. 친분이 어디서 굴러온 마법인가 ? 물론 기업가들의 친분이 비지니스 세계에서 객관적인 통계나 수치, 합리, 이익 추구를 뛰어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팀쿡은 우리에게 착한 친구이지 않다. 그 또한 "특허를 훔쳐간다면 누구든지 추적할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의 유연성이 없음을 확고히 한다. 지금 팀쿡은 삼성과의 부품 거래선을 도시바나 대만기업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최근 애플은 모바일뿐만 아니라 TV 시장을 향한 행보를 시작했다. 아직은 IPTV를 통한 콘텐츠 제공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언제든지 가전사업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기술적인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TV는 모바일보다 기술 면에서 수월하다. 이제 전선은 모바일 분야만이 아니다. 애플이 가전시장에서 복병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유통망과 마케팅 측면에서 이해해야한다. 애플왕국의 새 선장인 팀쿡은 관리와 마케팅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우습게 보기에는 실적과 시장의 지지가 잡스를 훨씬 능가할 정도로 탁월하다. 이제 곧 계곡에서 매복전이나 소소하게 일삼던 두 글로벌 강자는 바야흐로 대회전을 치루러 평원의 한 복판으로 나설 태세다. 전쟁은 이미 오래전에 발발했다. 1차 세계대전이 사라예보에서 젊은 황태자부부 암살로 일어난 게 아닌 것처럼 특허소송은 그저 도화선일 뿐이다. 이건희와 팀쿡, 삼성과 애플...지구상의 첨단산업을 이끌고 있는 양대 축이 운명을 건 전쟁을 치루고 나면 한 시대가 가고, 또 다른 시대가 온다.◆ 전후 세상이 바뀐다 곧 새로운 기업 질서가 확립된다. 그런 전조는 확연하다. 스마트폰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LG전자나 모토로라, 노키아가 사실상 몰락을 향해 가고 있거나 새로운 동맹에 들어가 영일 없이 생존을 의탁하는 처지로 변한 데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시장은 특허전 하나 치루는 것만으로도 삼성과 애플이라는 양강체제로 바꿨다. 더 크고 본질적인 전쟁이 닥치면 어찌 될 것인지 상상을 불허한다. 지금 전쟁은 그저 초기단계일 뿐이다. 닥쳐올 미래를 쉽게 가늠키 어렵다. 이 전쟁을 보는데는 몇가지 알아야할게 있다. 시장에서 경쟁이란 상대 기업의 금고에서 돈을 꺼내가는 것이지만 한 차원 높은 전쟁 수준에서는 금고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다. 결국 전쟁에서 지는 쪽은 혹독한 댓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이미 전쟁의 성격은 잡스가 가르쳐 줬고, 이기는 방법은 팀쿡이 제시했다. 명확히 이 전쟁의 성격은 ▲ 다가올 글로벌 기업 전쟁의 예고편이며 ▲ 전문가들이 설파한대로 구글 동맹과 반 구글동맹의 충돌로 애플과 삼성은 대리전이며 ▲ 장기전이다. "빌어먹을 구글. 당신들이 아이폰을 훔쳤어. 엄청난 도둑질이야. 안드로이드는 훔친 물건이야. 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테다. 핵전쟁도 불사하겠어. 구글의 제품들. 그러니까 안도로이드와 구글 닥스는 개똥이다." 개전 초기 구글동맹에 선전포고하면서 잡스는 전쟁의 성격을 정리했다. 여기서 삼성은 안드로이드 진영에 참여함으로써 MS 등이 참여한 애플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전쟁인데 하드웨어인 제조사들이 대리하는 양상이다. 이런 전쟁이 대공항의 시기에 펼쳐진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세계 경제 대공항, 금융 위기, 양극화 등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기와 맞물려 산업 전반이 거대한 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IT기업들의 전쟁은 여타 산업분야에서도 과거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고편이다. 개편기에 누구들 안전하며, 소용돌이 밖에서 유유자적할 수는 없다. 초보적인 관전자들은 누가 이길 것이냐에 목이나 늘이고 있겠지만... 그럼, 도대체 누가 이길 것인가 ? 기본적으로 전쟁이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걸을 이해한다면 어리석은 질문이다. 답은 시장이 결정한다. 아직 시장은 승자를 결정하지 않았다. 시장은 전쟁의 발화점이며 종결점이다. 얼마나 시장에서 병참(兵站)을 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해답은 이미 팀쿡이 다 알려줬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팀쿡에게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물었다. "아이폰처럼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한국에서 나온 아이디어나 기술 중 사라지거나 세계화되지 못한 것들을 모아서 연구하고 다시 조립한 게 스마트폰이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팀쿡의 답에 모두들 경악했다. 이 말은 한국기업들이 외면한 기술이 애플로 흘러들어갔고, 애플은 이를 받아들여 혁신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작은 거라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고, 약간의 댓가라도 지불하라는거다. 실제로 우리 대기업들이 수많은 기술자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데 인색하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혁신 ! 혁신 !..그 놈의 혁신 ?' 다들 혁신한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서 '잡스 흉내내기', '애플 따라잡기'에 혈안이다. 학자들도 다들 한마디 한다. 그러나 요체는 시장이다. 즉 시장에서 나온 아이디어, 혁신, 창의력을 수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시장과 더불어 혁신하고, 시장의 요구에 맞게 때론 시장을 이끌며 제품을 만들고, 시장의 창의를 신뢰해야 이긴다. 이 전쟁은 결코 삼성 혼자 하는 전쟁이 아니다. 시장의 개미들도 삼성만큼 격렬히 싸운다. 비록 맨몸으로 부딪치는 백병전일지라도 수많은 전투를 다 치루고 있다. 특허를 다투는 법정은 그저 지엽적이면서도 표면적인 전투의 하나다. . 시장에서 '애플빠'들은 투철하다. 그들에겐 죽어도 죽지 않는 교주가 있다. 그들에게 이 싸움은 성전이다. 크고 작은 전투에 서슴없이 목숨을 건다. 만약 삼성이 개미들을 무시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 애플빠들이 밀려들 때마다 "애국심으로 무장하자"는 주장이나 펼치고 있을 텐가 ? 아니면 "아직도 아이폰을 쓰니 ?" 어쩌구 하며 노이즈 마케팅이나 지르고 있을텐가 ? 그래서 우군들이 결집하기는 하는 건가 ? ◆ 싸우지 않는승리...시장의 힘을 믿어야 특허전에서 이기는 건 이기는게 아니다. 시장이 전쟁의 중심이다. 시장의 창의, 혁신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기업이 이긴다. 끝나지 않은 싸움이니 아직 늦지 않았다. 혁신은 기업 내부에만 있지 않다. 시장에 더 많다. 이를 수용하는게 혁신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이란 커넥팅이라고 했다. 시장과의 소통, 연대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연결해야 산다. 그저 집어 삼켜서는 안 된다. 시장에서 병참과 군사가 나온다. 자발적인 병참, 군사 없이는 어떤 전쟁도 이길 수 없다. 특허전만 전쟁인가 ? 특허 몇개로 전쟁을 치룰 수 있는가 ? 전쟁의 성격과 승리의 기본을 이해했다면 삼성의 전략은 보다 분명했을 것이다. 확전하지 않는 대신 전열(생태계, 시장 등)을 재정비하는데 더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특허 몇개 더 많다고 확인받아봐야 시장이 인정하지 않으면 다 허사다. 특허 없어도 시장이 인정하면 그게 승자다. 삼성의 오류는 소프트웨어 육성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기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융합해야하는데..." 그들은 여기서 관련 종사자들을 대거 영입하는데 혈안였다. 잘못된 방식이다. 생태계를 더 죽이는 방식이다. 병참을 해야하니 잔뜩 무기를 사다 부려놓고 병사들이 필요하니 장정들을 당장 징발한 식이다. 이는 장기전이 아니다. 장기전이라면 우선 장정들에게 힘내라고 새참 내주고, 무기 대신 농기구를 보내주고, 각 농가에 새 농사 기법과 농자금을 뿌려줘야 하는게 아닌가 ? 따라서 삼성의 병참 방식은 전장인 시장의 진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할만하다. 수많은 특허를 만들어 회사에 쟁여놓는 건 별 거 아니다. 무겁기만 해진다. 여럿이 연환계를 짜서 거대한 평원으로 나아가야 한다. 애플과의 특허전이 지적 재산권 분쟁이라고 할 때 삼성의 지적 재산의 생산, 축적, 관리 방식이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고에 돈이 많아야 무엇하나 ? 전쟁비용으로 좀 쓰고, 배상금으로 좀 내놓고 나면 얼마나 남는다고 ? 모든 해답은 시장에 있다. 이제 글로벌기업은 병참을 혼자 다 할수는 없다. 소소한 기술 하나가 대세를 가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장은 거대한 바다다. 기업은 그저 조각배와 같다. 바다는 언제나 배를 띄워주기도 하지만 성난 파도를 덮쳐 침몰시키기도 한다. 바다에서 사는 모든 것의 힘, 그 바다의 힘으로 항해해야 대해에 이를 수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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