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아시아경제신문이 매주 주말 마다 구간(舊刊)을 살펴보는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시작합니다. 여기엔 책을 쓴 작가가 그립다는 이유로 등장하는 책도 있을 것이고, 책 내용 가운데 한 대목이 떠올라서 나타나는 책들도 있을 겁니다. 이유야 어쨌든 신간이 아닌 구간을 다시 한 번 펼쳐드는 건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입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였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읽고 싶은 책', 그 첫 번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사/ 11800원'먼 북소리'의 첫 장에 어떤 그림이 실려 있는지 혹시 생각이 나는가. 답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지도다. 그 바로 뒤로는 미코노스 연립주택에서 문어를 말리고 있는 사진과 전갱이를 굽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 등이 나온다. '유럽 여행기'치고는 소박한 시작이다. 다른 여행기 같았으면 뭐가 이따위냐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루키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변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 이것이 바로 하루키의 방식인 것이다. 이 책은 하루키가 1986년 가을부터 1989년 가을까지, 3년 동안 로마와 그리스 등을 여행한 기록이다. 그가 여행을 결심한 계기 역시 담담하다. 하루키는 머리말에서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 그냥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았다…그렇다. 나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던 것이다'라고 썼다. 이런 저런 이유 댈 필요 없이 그저 여행이 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루키답다. '먼 북소리'는 내내 차분한 흐름을 이어가는 책이지만, 그 때문에 더 흥미롭기도 하다.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썼다고 하는데도 읽을 때 마다 피식피식 웃게 되는 대목들이 있다. '그리스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념이란 걸 배우게 된다. 목욕탕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도 호텔 주인은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므로 체념하는 수밖에 없다'. '전 세계에서 그리스인만큼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 민족은 별로 없을 거다. 활기차게 인사하는 점에 한해서는 그리스인이 최고다'라는 내용이 그 예다. 이런 게 하루키의 담담한 글쓰기가 주는 재미인가 보다. 꼭 여행길이 아니어도 좋다. 이번 주말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하루키가 전하는 유쾌함을 몸소 느껴보길 권한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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