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되살린 '법적 사망' 절도범

절도범 잡고 보니 사망자?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잘못된 실종선고로 이미 20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잘못 등재된 절도범에게 법원이 실종선고 취소와 함께 법정최저형을 선고해 그가 사회에 돌아올 수 있는 길을 터줬다.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지난 6월 서울 중구 관철동 길가에서 취객의 지갑을 털다 경찰에 붙잡혀 절도(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모(44)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을 열어 법정 최저형인 징역3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생후 일주일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뒤늦게 큰아버지의 아들로 출생신고는 됐지만, 초등학교를 마치고 할머니와 전전하던 끝에 1985년 무단전출로 주민등록이 직권말소됐다. 1992년 큰아버지가 사망하자 가족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이씨에 대해 2년 뒤 실종선고를 청구했고, 법원은 "이씨의 실종기간이 1991년 5월 30일에 이미 만료했다"며 95년 실종선고했다. 우리 민법은 실종기간이 만료한 때 사망한 것으로 보도록 정해 이씨는 91년 5월부터 실종선고가 취소된 올해 8월까지 20여년간 법적 '사망자'였다.실종선고 당시 이미 절도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씨는 출소 후에도 뚜렷치 않은 신분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자 절도행각을 반복하다 1993년 첫 수감부터 올해 5월 출소까지 절도로만 6차례나 감옥을 드나들었고, 출소한지 3주만에 다시 죄를 저질러 이번 재판을 받게 됐다. 이 중 첫 수감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번은 ‘사망자’인 채 였다. 법원은 형사 피고인에 대해 신원을 확인하도록 되어있지만 이는 당사자 본인이 맞는지에 국한돼, 경찰은 매검거때마다 신분증이 없는 이씨를 지문대조로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이씨가 사망자 신분으로만 다섯 차례나 더 감옥을 드나들게 된데 대해 법원 관계자는 "본인이 직접 실종선고 취소를 구하지 않는 이상 가출ㆍ의절처럼 법 밖으로 나간 '살아있는 사망자'에 대해 법원이 강제로 신분을 변경할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수사기관이든 법원이든 잘못된 실종선고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며 그간 이씨가 겪은 곤란에 대해 일부 책임을 인정하고 법정 최하한인 3년을 구형했다. 배심원단도 유죄를 인정하되 징역 3년 의견을 내놓아 재판부는 "실종 선고로 생활이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해 법률에서 허용하는 가장낮은 형량을 선고한다"며 배심원단 평결대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한편, 이씨에 대한 실종선고 취소는 정식재판에 앞서 이씨가 "호적상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어 관계기관을 돌아다녀도 신분증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고, 생계를 해결할 수 없어 절도범행을 반복했다"며 "실종선고가 취소된 뒤에 재판이 진행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자, 재판부가 처벌 이전에 출소 후 생업에 종사하도록 사망자 신분에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시간적 여유를 배려한 끝에 이뤄졌다.실종선고 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94~95년 이씨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지만 우리 법은 실종선고가 접수된 후 본인 등의 신고가 없으면 실종을 선고하도록만 정해 이같은 사실을 알리 없던 이씨도, 법원도 그가 '사망자'신분이 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순 없었다.정준영 기자 foxfury@<ⓒ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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