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 전월세, 뻥뚫린 세금
[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정부가 전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제도에 큰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과세를 강화할 경우 세금증가분이 세입자에게 그대로 전가돼 전월세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실제 과세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월세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과세에 대한 미비점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자칫 조세저항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1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1년 폐지된 뒤 올해 다시 부활된 전세보증금 과세는 주택 3채(3억원 초과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제도 시행 초기인 데다 세입자에 대한 세 부담 전가 등을 고려해 1가구 3주택 이상자를 대상으로 과세 기준을 정했다는 것이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설명이다.그러나 3주택 기준은 현행 월세와 양도소득세에서 정한 다주택 기준과 달라 복잡할 뿐만 아니라 균형이 맞지 않는다. 월세에선 고가 주택의 경우 1채 이상이면 과세 대상에 포함되고, 양도세는 일반적으로 2채 이상 보유자를 다주택으로 간주해 중과한다. 그러나 전세보증금 과세는 1주택, 2주택도 아닌 3주택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또한 월세와 양도세에서 고가 주택 기준이 기준시가 9억원으로 정해진 반면 전세보증금 과세에선 이런 기준이 아예 없다. 이로 인해 보유 주택이 3채만 넘지 않으면 기준시가나 보증금이 아무리 많더라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보증금이 훨씬 적은 저가 주택 3채 보유자들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것에 견줘보면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밖에 없다.
월세에 대한 과세에 있어서도 허점이 있긴 마찬가지다. 월세에선 기준시가 9억원이 넘으면 1주택자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고가 1주택자는 자기 집을 전세로 내놓고 다른 곳에 월세 또는 전세로 들어가면 세금이 없지만, 자기 집을 월세로 놓고 이사하면 고스란히 세금을 물게 된다.현행 월세 과세는 월세 소득에 세금을 물리면서도 정작 월세 소득 기준이 없다. 1주택자의 경우 주택 기준시가 9억원만을 잣대로 과세 여부를 판별하다 보니 월세 수입이 더 많은 9억원 이하 주택 보유자들이 비과세되는 일마저 생긴다.최근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가구의 절반 가량이 월세 계약을 한 것으로 조사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가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국 임대차 가구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기준 49.7%로 나타났다.정부는 이같은 전월세 과세 제도의 미비점을 인정하면서도 법이나 제도를 당장 보완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실토했다. 김형돈 기재부 조세정책관은 "전월세 과세를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정한다"며 "다만 과세를 강화하면 세입자들한테 전가가 되고, 전체적인 (전월세)가격이 올라갈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또한 그는 "현재 과세당국인 국세청에서 전월세 과세 대상을 모두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구조"라며 "모든 과세가 그러하듯 전체를 찾아내서 100% 과세하지는 못한다다는 점도 염두해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전문가들은 이런 허점을 없애려면 기준시가와 월세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세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제 전문가는 "올해 다시 부활된 전세보증금 과세의 경우 신고 기간인 내년 5월이 돼야 실제로 세금이 부과되는데, 그때가 되면 불만을 토로하는 집주인들이 대거 나타날 것"이라며 "조세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전월세 과세 제도를 기준시가와 월세 수입액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하루빨리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고형광 기자 kohk010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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