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성 김 대사 지명자, 미 상원 인준 통과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성 김(51·한국명 김성용·사진) 주한 미국 대사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이 13일(현지시간) 미 상원을 통과했다. 미 상원은 이날 김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이에 따라 한미 수교 이후 129년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주한 미 대사가 부임하게 됐다. 김 대사는 이르면 이달 안에 부임할 것으로 알려졌다.김 대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6자 회담 특사로 지명돼 상원 인준을 거쳐 '대사' 직급으로 승진하며 한국계 첫 대사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6년에는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국무부 한국과장에 임명되는 등 미 국무부에서 첫 한국계 임명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미 행정부 내에서는 빅터 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 유리 김 북한 팀장과 함께 한국 전문가로 통한다.1960년생인 김 대사는 서울 은석초등학교를 다녔다. 주일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한 부친 김재권(1994년 사망) 전 주일공사가 1974년 공직을 떠나 미 캘리포니아주로 이민 가면서 미국 생활이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때다.김 전 공사는 1973년 주일공사로 재직할 당시 김대중 납치 지시가 내려오자 이철희 중앙정보부차장에게 강력히 반발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서명을 확인하기 전까지 지시에 따를 수 없다고 버텼다 자의반타의반 옷을 벗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80년 미 시민권을 취득한 김 대사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로욜라 로스쿨, 런던정경대학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서 검사로 재직하다 직업 외교관으로 변신했다.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는 주한 미 대사관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이어 일본 도쿄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홍콩에서도 근무했다. 2006년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되면서 북한 문제를 맡게 됐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2008년 6월에는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현장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북한 방문 횟수만 10번이 넘는다. 같은 해 7월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후임으로 6자 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로 발탁됐다.2009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지만 김 대사는 계속 대북특사를 맡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서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가 그에게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만 외교 현장에서는 반드시 영어를 사용한다. 명확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다.김 대사는 미 주류 사회에서 성공한 한국계 가운데 한 명으로 집안에서는 철저하게 한국식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 출신인 부인과 두 딸을 둔 그는 워싱턴에서 가까운 버지니아주 그레이트폴스에 살고 있다.김 대사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에서 홀로 사는 노모를 자주 찾아 뵙는 효자로도 유명하다. 아버지가 폐암으로 투병할 때는 국무부를 1년 휴직하고 간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김 대사의 어머니는 가수 임재범씨의 아버지인 임택근 전 아나운서의 누나다. 그러니 김 대사와 가수 임재범씨는 외사촌지간인 셈이다.이진수 기자 comm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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