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기자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세계에서 한국인처럼 냄새에 예민한 민족은 아마 없을 거다. 여행 혹은 비즈니스로 해외에 나간 사람들은 냄새 때문에 끔찍했던 순간들을 무용담처럼 풀어놓는다.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후각을 자극하는 중국 특유의 기름 냄새로 속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던 사람도 있으며, 평소 '조석'으로 먹는 일상 음식 '카레'를 본고장 인도에서 전혀 다른 냄새와 외양의 '커리'로 만나 기겁했던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냄새' 측면에서 한국인들도 절대 자유롭지는 않다. 한국인들을 규정짓는 대표적인 냄새는 '마늘'이다. 톡 쏘는 향과 맛의 마늘은 한국 요리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필수 양념으로, '단군신화'의 웅녀 이야기에도 거론될 만큼 한국사와 맥을 함께 하는 식재료다. 그러나 마늘 특유의 향과 강한 맛 때문에 소수의 슬라브와 일부 라틴계 민족을 제외한 대다수 외국인은 마늘을 즐기지 않는다. 한국 전체를 지배하는 '마늘 향기'에 놀란 외국인은 보통은 한국인을 '마늘에 환장한 민족'으로 여기며,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썩은 마늘(腐ったにんにく)'로 칭하며 비하했다는 사료도 존재한다.
'마늘에 미친'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매드 포 갈릭 Mad for Garlic'은 이탈리아 음식에 건강 식재료 마늘을 결합한 한국형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이다. '토니 로마스' '스파게티아' 등 8개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보유한 '썬앳푸드'가 지난 2001년 6월 압구정 1호점을 시작으로 론칭한 '매드 포 갈릭'은 현재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해외 두 개 사이트를 포함 모두 스무 개까지 사이트 수를 확장시켰다. 카페와 레스토랑, 선술집의 기능을 모두 하는 비스트로(bistro)의 형태로, 전채에 해당되는 스타터(starter) 외에 샐러드, 파스타, 라이스와 리조또, 대여섯 종류의 스테이크가 모여있는 '비프앤스페셜' 등 40여 가지의 이탈리안 요리와 100여 종의 다양한 가격과 국적의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실 '매드 포 갈릭'에서 내는 이탈리아 요리들이 정통(authentic) 이탈리아 식은 아니다. '이탈리안과 마늘'이라는 대전제를 정한 후 세계를 도는 2년간의 벤치 마킹을 통해 '매드 포 갈릭'을 론칭한 신서호(38) 총괄이사는 정통 이탈리안 요리에 마늘 등 현지 식재료들을 사용해 '한국화'된 이탈리아 메뉴를 만들어냈다. 승부처는 마늘이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부재료의 위치에 멈춰있던 마늘을 주재료의 위치까지 격상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마늘 특유의 강한 냄새를 숨기는 동시에 특유의 풍미를 유지시키려고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결국 그는 통마늘을 우유에 담궈놓는 비법을 찾아냈다. 우유 속 진한 유지방은 마늘의 바깥 부분을 코팅(coating)해서 마늘 냄새를 최대한 막아주면서, 조리 시 마늘의 주요 성분인 '알리신'의 파괴도 최소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 요리에 간이 전혀 안 된 바게뜨를 곁들이는 탓에 이탈리아 요리들이 지나치게 짜다는 것에 집중했다. 한 가지 주 요리에 집중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소금의 사용을 기존 이탈리아 요리에 비해 30% 정도 낮췄다. 또한 '매드 포 갈릭'의 원칙은 당일 아침에 모든 식 자재를 매장에 공급하고 그날 이를 모두 소진시키는 '데일리 프렙(Daily Preparation)'이다. 쉽게 돈이 벌리는 '가맹사업' 도 벌리지 않고 직영을 고집한다. 전 매장의 서비스와 맛을 철저히 균일화하기 위함이다.
여느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마늘에 미친' 기자가 '매드 포 갈릭'에서 맛본 요리는 총 여섯 가지다. (칼로리를 고려할 때 2인의 경우는 스타터나 샐러드를 포함해 3개 정도의 요리가 적당하다) 전채에 해당되는 '앤쵸비 갈릭 크림 소스 퐁듀'를 시작으로 '스피나치 샐러드'와 '갈릭 앤 스윗 포테이토 피자', '갈릭페뇨 파스타'에 '갈릭 포유 스테이크'와 '갈릭 허그 스테이크' 등 두 종류의 마늘 스테이크가 차례로 테이블에 올라왔다. 성대한 '마늘 판'이었다. 마늘의 매운 향은 최대한 덜하지만 마늘 특유의 맛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방울토마토와 컬리플라워ㆍ브로콜리 등과 올리브 오일로 구워낸 국산 의성 산 육쪽 마늘을 앤쵸비 소스에 찍어 먹는 '앤쵸비 갈릭 크림 소스 퐁듀'는 비타민과 단백질이 두루 포함된 세련된 전채 요리였다. 생 시금치와 베이컨에 발사믹 오일과 마늘을 끼얹은 샐러드는 입 안에 청량감을 안겼으며,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루꼴라와 모짜렐라 치즈 볼을 토핑으로 얹고 고구마와 우유ㆍ마늘 소스로 구워낸 '갈릭 앤 스윗포테이토 피자'는 쌉쌀한 루꼴라와 달콤한 고구마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그밖에 중국식 매운 하얀 '짬뽕'을 닮아있는 '매드 포 갈릭'의 효자 상품 '갈릭페뇨 파스타'와 마늘이 고기의 느끼한 누린내를 덜해주는 두 안심 스테이크에서는 마늘과 육류가 최적의 궁합임을 다시 깨닫게 했다. 이쯤 되면 마늘 냄새에 기겁했던 외국인들의 마음도 살짝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집은// '썬앳푸드' 총괄이사 신서호
"처음 론칭했던 두 개 브랜드를 말아먹고 그 다음에 절치부심해서 만든 브랜드가 '매드 포 갈릭 Mad for Garlic'입니다. 1999년이 이탈리아 음식이 각광받기 시작하던 시기라, 이탈리아 음식에 대표적인 건강 식재료인 마늘을 결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매드 포 갈릭' 외에도 총 8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썬앳푸드'의 신서호(38) 총괄이사의 말이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괄이사의 자리에 오른 신씨는 2년에 걸친 시장 조사를 통해 '매드 포 갈릭'에서 마늘을 양념에서 주 식재료로 끌어올리려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매드 포 갈릭'은 '썬앳푸드'에서 최고 매출을 내는 선도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다소 '매드 포 갈릭'의 음식 맛이 짜지 않냐는 기자의 지적, 즉 현재 음식 트렌드인 '저염'에 대해서도 신씨는 목소리를 높인다. "맛을 포기하면서까지 음식에서 소금을 빼앗는 것은 음식에게 못할 짓"이라는 것이 그의 굳은 음식 철학이다. 대신 '매드 포 갈릭'은 좋은 품질의 100% 국내산 염전 소금의 적정량만을 사용하고, 고객의 요청에 따라 무한정으로 음식을 다시 요리ㆍ제공하는 리쿡(Re-cook) 등의 '트렌디'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자문위원은// 김은미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식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 중의 하나인 마늘은 토마토, 시금치, 보리 등과 함께 세계 10대 건강식품 중 하나로 꼽힌다. 마늘 특유의 냄새를 내는 성분 '알리신(Allicin)'은 혈액 순환과 소화 촉진, 당뇨병과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마늘을 익히면 냄새가 없어지면서 알리신도 파괴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마늘을 센 불에 직화로 재빨리 익혀 먹거나 지방산 오메가 3가 풍부한 올리브 오일에 볶아내면 영양소 파괴는 거의 없으면서 체내 흡수율이 증가하는 장점이 있다. 또한 생마늘이 익힌 마늘에 비해 좋다는 생각은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가까운 편견이다. 내장 기관이 약한 사람이 다량의 생 마늘을 섭취할 경우는 구토와 위장 장애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독특한 향을 내는 향신 채소(herb)의 일종인 루꼴라(Rucola)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사용되며, 영어로는 아루굴라(Arugula), 프랑스어로는 로켓(Roguette)이라고 불린다.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식욕을 돋우므로 주로 샐러드와 피자 등의 요리에 생으로 이용되지만 가볍게 볶아 먹어도 좋다. '매드 포 갈릭'의 '갈릭 앤 스위트포테이토피자'가 많은 양의 생 루꼴라와 이탈리아 모짜렐라, 파마산 치즈를 조합한 것은 좋은 선택이다. 비타민과 미네랄은 풍부하지만 단백질이 부족한 루꼴라를 단백질 덩어리 치즈가 보완해 주는 형상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황인철(SQUARE STUDIO)<ⓒ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