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무협지에서 고수(高手)는 늘 마지막에 등장한다. 도전자가 한 수 아래 협객들을 모두 물리친 뒤에야 만날 수 있다. 지금 물가 대전(大戰)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이렇다. 기획재정부에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총동원해 물가와 일전을 벌였지만, 이러다간 올려잡은 물가 전망치(연간 4.0%)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나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지난 18일 "선제적 대응 실패"를 질책하면서 "물가를 직접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20일에는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뾰족수'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정권 말, 이 대통령의 선택은 아슬아슬해보인다. 경제부처들을 졸지에 '아마추어'로 만들어버리며 전면에 나섰지만, 대통령이 나선다고 뛰는 물가를 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다. 정부는 연초부터 기름값에 통신비 인하를 압박하고, 대기업들과 날을 세우면서 가공식품 가격을 묶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관측 시스템을 강화하고, 수급을 조절해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장마 뒤 푸성귀와 과일값은 연일 급등세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엄포를 놓아도 시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게 확인된다면, 정책 신뢰도는 뚝 떨어질 게 뻔하다.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도 가속이 붙을 것이다. 각종 미시대책의 한계가 드러난 이 시점에 대통령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금리 인상과 저환율 용인 정도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른바 '근본적인 대책'들이다. 문제는 정책의 목표와 결과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자니 8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걸린다. 서민 돕자고 내놓은 정책이 서민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고환율 정책 논란도 마찬가지다. 원달러 환율이 이미 연저점 아래로 내려가 1050원대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 고환율 외길에선 벗어난 듯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출로 돈을 벌어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떨어지는 환율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게 정부의 딜레마다. 그러니 대통령이 선봉에 선 물가 전쟁은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사이에서 벌어지는 노선 투쟁일지 모르겠다. '친서민' 고지를 두고 벌이는 지극히 경제적이면서도 정치적인 투쟁이라는 얘기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이 이미 사랑받는 대통령이기는 포기했다. 하지만 적어도 대과(大過)가 없는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번 물가 전쟁은 이 대통령을 어떤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하게 될까.박연미 기자 ch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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