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조수미가 부른 까치니의 '아베 마리아'를 들으면 정말로 기도하고 싶어진다. '중얼 중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지, 필요한 걸 이루게 해달라고 하는 건지 모르는 사람도 손을 모은다. 그녀의 노래는 너무나 감미로워 천상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기도하고 싶어진다. 찌들고 힘든 세상속에서 조수미의 노래가 주는 의미는 위안, 평온 그 이상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은 조수미에게 "10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이라고 극찬했다. 주빈 메타는 "신이 주신 목소리'라고도 찬사했다. 플라시도 도밍고도 그녀와 함께 녹음했다.세계 5대 오페라극장에서 게오르그 솔티, 주빈 메타, 알프레드 크라우스, 로린 마젤 등의 명 지휘자와 함께 여러 오페라에 출연했다. 그녀는 위대하다. 인간의 영혼을 울린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그녀와 그녀의 음악을 잘 모른다. 명성만 안다. 그녀의 오페라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도 드물다. 때로 우리는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그녀가 천상의 사람으로 착각한다. 어떤 이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인간일 수 없다. 그런 그녀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왔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테마곡 '나 가거든'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그래서 천상의 그녀에게 물었다. "위대한 당신이 부르기에는 너무 격이 낮지 않은가 ?" 그녀는 "대중들이 보다 쉽게 음악에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렀으며, 필요하다면 무엇이라도 부를 것"이라고 대답했다.실제로 그녀는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대중가요도 부른다. 때로 어설프게 춤도 춘다. 사람들 중에는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 망가지겠다고....' 그녀가 대중가요를 부르고, 춤추고, 망가질 때 유쾌하다. 무겁지 않다. 고상 떨지 않고 음악 얘기를 한다. 음악을 즐기게 한다. 명성도 벗어던지고, 그 명성이 가진 상품성도 내려놓고 그녀는 그렇게 서슴없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우리 곁에 있으려고 항상 애쓴다. 노래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행복과 슬픔, 고충도 다 드러내 보인다. 조수미. 그녀가 우리에게 내린 은총은 천상의 목소리다. 거기서 들려오는 아름다움이다. 아니다. 진짜 은총은 바로 우리에게 나눠주려는 끊임없는 미덕이다.그녀가 비단 명성 때문에 위대한 것만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조훈현, 리그형식으로 진행되는 바둑판 위에서 그는 늙고 힘 없다. 지금은 랭킹이 낮아 본선 시드조차 받지 못한다. 리그 규칙상 보호 선수나 자율 선수로도 지명 안 된다. 그는 오래전에 바둑판을 떠나야 맞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바둑판 앞에 있다. 어린 후배들에게 수도 없이 밟히면서도 떠나지 않는다. 조훈현은 대한민국 최고 바둑 기사다. 그는 전신(戰神)이다. 그가 가진 타이틀은 금세기 어느 분야에서도 이룩하기 힘든 성과다. 대한민국 최초의 9단 - 1982년, 전관왕 3회 달성 - 1980년 9관왕, 1982년 10관왕, 1986년 11관왕,타이틀전 최다연패 기록 - 패왕전 16연패(1977년 13기 ~ 1993년 28기), 통산 최다 타이틀 획득 - 158회, 타이틀전 최다 출전 - 233회, 최다 대국수 - 2010.1.5 현재 2567국, 통산 최다승 - 1837승, 최고령 타이틀 획득 등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다. 조훈현은 지난해말 제1기 대주배 시니어최강자전 결승3번기 제2국에서 '필생의 숙적' 서봉수 9단을 맞아 흑으로 266수 만에 2집반승을 거두고 우승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2003년 1월 제7회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7년11개월 만의 타이틀 획득였다. 조훈현은 통산 1837승째를 올려, 1364승으로 일본 최다승자인 조치훈 9단보다 473승이 앞선다. 어떤 기록도 조훈현의 그것이 미치지 않는다. 그는 바둑세계에서 올림푸스산의 제우스다. 적들에게 그가 놓는 돌 하나 하나는 천둥, 번개보다 광폭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그가 올림푸스에서 내려왔다. 그곳에 머물 수도 있었다.하지만 우리에게 오는 길은 처참했다. 온통 가시밭길을 걸어 피투성이, 찢긴 몰골로 돌아오기까지 목숨 한조각 한조각을 다 내놓아야했다. 환갑에 이른 그는 오십세가 되기 전에 어린 제자에게 패했다. 바둑을 좀 아는 사람들은 고수들의 패배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단순한 내상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란 검투사가 적에게 찔린 것과 같다. 정신적인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는 젊어서 수많은 적들은 무수히 쓰러뜨렸다. 쓰러진 적은 다시 일어나지 못 했다. 그도 쓰러졌다. 어린 제자, 후배들에게 수도 없이 찔리고 피 흘렸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났다. 명상하고, 날마다 등산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하루에 다섯갑씩 피우던 담배조차 끊었다. 그리고 후배들의 대국장에도 나가고, 해설도 하면서 우리 곁으로 왔다.그와 싸우던 세계적인 기사들도 사라지고, 그의 등뒤로 빛나던 광휘도 사라졌다. 홀로 남아서 묵묵히 패배를 모두 안아줬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 ?" 그는 말했다. "한번 질 때마다 며칠은 앓아 누울 지경으로 아프다. 그래도 일어나서 후배들과 대국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딛고 가야만 우리 바둑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훈현은 승리보다 패배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조수미와 조훈현. 그들은 그들의 세계에서 대가(大家)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산봉우리보다 높은 재부를 쌓았고, 명성을 얻었으며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무너지는 법을 모르던 사람들이다. 한때 그들이 뿜는 아우라는 세상을 다 덮고도 남았다. 그런 그들이 대중 앞에서 자신을 무너뜨리면서도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한 대가인 것은 그들이 지닌 모든 재산-대중으로부터 얻은-을 혼자 소유하지 않는다데 있다. 조수미처럼 나누고, 조훈현처럼 디딤돌이 되기를 자청한다. 과거의 명성에 사로잡혀 대중의 찬사가 사라질까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까지도 돌려주려고 한다. 그들의 진정한 혼이 대중에게 있으며 또한 포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대가란, 두려움마저도 이길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도록 안목을 내려준다. 서태지는 신비하다. 우리 대중 음악사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러나 그는 신비주의라는 연무속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유리안치되기를 자청했다. 신비주의는 시장의 논리로 해석하면 대중의 욕망, 환상에 기대어 상품을 파는 방식이다. 그의 상품에 대해 새롭게 해석해야할 시간이 왔다. 신비주의의 아류들이 시장에서 대중을 현혹하고, 생산체계를 붕괴하지 않게 하려면 대중들도 서태지의 신비주의를 바로 알아야한다. 서태지식 신비주의의 몰락은 시장엔 유익하다. 그래야 예술이 대중들에게서 유리안치되지 않고 다음 생산자들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대가들을 만날 수 있고, 대가들을 키울 수 있으며, 대가들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서태지는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야한다. 제대로 몰락해야한다. 몰락한 모습 그대로 다 보여주며 돌아오는 것, 지금 서태지와 서태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견뎌내야할 대목이다.시장은 항상 댓가를 분명히 받으려 한다. 서슴없이, 숨김없이 보여줘야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그것이 서태지가 대중에게 주는 진정한 은총이리라.이규성 기자 peac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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