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100분 토론>에서 목표는 ‘웃으며 끝까지’였다”
<div class="blockquote">김여진은 예쁘다. 흔히 말하는 여배우의 ‘여신급 미모’ 같은 잣대를 내려놓고 들여다보면 그는 참 예쁜 사람이다. MBC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그가 연기하는 청각장애인 미숙이 흰 이발소 가운 차림으로 수줍게 미소 짓는 얼굴에서 봄의 기운이 성큼 다가오는 것처럼 그에게는 좀처럼 보기 힘든 생동감이 있다. 그런데 요즘 김여진은 바쁘다. 연기를 하고, 트위터를 하고, 대학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생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투쟁 중인 해고 노동자들의 근황을 전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감히 입 밖에 내기조차 힘든, “젊은이들의 꿈이 대기업 따위가 되는 건 반대”라는 김여진의 말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어느 인생 선배의 진심으로 들린 것은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투쟁 현장에서 보낸 대학 시절, 연극 무대에서 시작된 배우로서의 삶, 트위터를 중심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지금까지,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걸어가고 있는 ‘여자 사람 배우’ 김여진을 만났다.
지난 주 <내 마음이 들리니>가 방송을 시작했는데, 처음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나요. 김여진: 사실 그동안 드라마를 못 했나 안했나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꼭 하고 싶은 드라마가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들리니>는 대본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정서가 좋았어요. 제 역할이 지금 영규(정보석)와 결혼하는 미숙인데 초반에 한 번 사라졌다가 몇 회 지난 뒤 세월이 흐른 뒤에 또 다른 미숙으로 돌아오거든요. 이름도 얼굴도 똑같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 거죠. 그래서 1인 2역을 하게 된 것도 재미있고, 실은 무엇보다 김상호 감독과의 우정이 가장 컸어요. (웃음) <H3>“감정을 밖으로 다 발산하는 수화는 매력 있는 언어”</H3>
<내 마음이 들리니>를 쓰는 문희정 작가는 SBS <그대 웃어요> 같은 전작에서도 가족을 어떤 장치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따뜻한 정서를 잘 포착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여진: 그리고 재미있는 게, 극 중에서 약간씩 하자 있고 모자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루저’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족 구성을 보면 사실 누구 하나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어요. 좀 다른 개념의 가족인데 그럼에도 그들과 대비되는 부잣집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인간적으로 살거든요. 사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보통의’ 가족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이 성인이 돼서 집에서 독립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고 그 다음에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 건데 부모님, 형제자매에 얽혀서 서로 책임감만을 느끼고 사는 게 과연 현실에서 그렇게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있어요. 그런데 많은 가족 드라마에서는 가정의 평화가 곧 개인의 행복인 것처럼 그리죠. 김여진: 저는 그건 좀 사기인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조금 다른 느낌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다 같은 동료이거나 친구일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애틋하게 보살펴준다는 점에서. 극 중에서 미숙이 청각장애인인데 그래서 수화를 처음 배우셨다고 들었어요. 김여진: 드라마 팀에서 구해 주신 수화 선생님께 몇 번 레슨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실 수화는 딸로 나오는 (김)새론이가 훨씬 많이 해요. 걔는 수다스런 성격이고 저는 수화로조차 말을 많이 안 하는 성격이라 오히려 어렵고 정교한 수화보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표정이랑 감정 연기를 같이 하는 거죠. 수화라는 게 사실 또 다른 언어인 건데, 그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지만 직접 배워보니까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거나 느껴지기도 하나요?김여진: 우리가 “꽃향기가 나”라고 말할 땐 다섯 음절을 쓰지만 수화로는 (수화 동작 하며) “꽃”, “향”으로 끝이거든요. 음절로 치면 두 음절, 짧고 단순해요. 그런데 ‘냄새가 난다’와 ‘향기가 난다’를 표현하는 동작은 같으니까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게 돼요. 언어를 적게 쓰고 감정이나 다른 여러 가지를 동원해서 얘기를 하는 건데, 저는 어쩌면 이게 말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감정연기 할 때 굉장히 시원시원한 느낌이 들어요. 표정을 많이 써도 되고, 감정을 밖으로 다 발산하는 느낌이 드니까 매력 있는 언어인 거죠. 트위터 프로필에 “순하다. 정말이다”라고 적혀 있어요. ‘정말’이라는 건 앞의 말을 강조하기 위함일 텐데요. (웃음) 김여진: 안 믿어준다 이거죠. (웃음) 안 믿어주지만 정말이라는 거. 프로필을 이렇게 바꾸게 된 건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뒤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랑은 얘기를 시작하면 바로 싸우잖아요. (웃음) 그나마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엄마가 갑자기 “니가 어릴 때 참 순했는데” 하시더라고요. 애 셋을 키웠는데 첫째인 제가 또래 다른 애들에 비해 정말 순했대요. 말도 잘 듣고 아니라고 거부하는 법이 별로 없었다고, 그런데 가끔 한 번씩 고집을 피우면 아무리 매를 들고 쫓아내도 안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도 엄마 생각에 저는 그냥 순한 아인데, 엄마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 삶을 사는 거예요. 제가 연기를 하는 것도 아직 잘 안 믿기실 정도로. 그 얘길 듣고 있으니 엄마가 믿고 있는 그게 어릴 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정말 순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것도 있어서요. 순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는 게 아닐까요, 김여진: 그런데 결국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건 제 마음이잖아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있으면 그걸 개선하되, 순하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못 그럴 때가 있으니까 화도 내고 억지도 피우고 하는 건데 기본적으로는 순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아주 과격한 혁명적 발상이라도 그걸 이뤄가는 과정은 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요. <H3>“뭐가 됐든 하나를 끝까지 파면 알게 된다”</H3>
그런 점에서 재미있는 게, 대학 시절 운동을 할 때 가장 강성 조직에 계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대오 맨 앞에서 “돌고래같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분도 계시던데,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요즘 MBC <100분 토론>에서 상대를 설득하기도 하고 tvN <브런치>에서 이재오 장관에게 굉장히 부드러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렇게 변화한 걸까 궁금했어요. 김여진: 학교 다닐 때는 말 그대로 강성조직에 있었어요. 어떤 조직보다도 철두철미하고, 혁명의 주체가 민중이고 노동자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생회 활동도 안 하고 노동자연대, 빈민연대 활동만 했죠. 초반에 가장 고민했던 건 왜 돈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 사람이 언제나 일하는 사람보다 잘 살까 라는 지점이었어요.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이 있고 힘이 센 사람이 있다고 쳤을 때, 왜 꼭 머리 좋은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져야 할까. 머리만 좋아서는 아무 것도 만들 수 없잖아요. 십대를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왔는데 세상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 그런 의문을 갖게 되고, 실제 철거지역에 가고 원진레이온 현장에 가게 된 거죠. 거기서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그 아이들을 안아보고, 산업재해에 의한 노동자들을 만난 경험이 굉장히 소중해요. 어떤 옳고 그름, 관념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직접 본 건 사라지는 경험이 아닌 것 같아요. 그 시절에 가장 컸던 딜레마는 뭔가요. 김여진: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힘들었지만 힘든 걸 싫어하지는 않아요. 저는 행복하다는 게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운동을 하고 투쟁을 한다는 건 어딘가에 계속 분노해야 한다는 건데 사람은 화를 오래 내지 못해요. (웃음) 화를 오래 내면 마음이 상하고 병이 생겨요. 그런데 그 때는 운동이라는 형태 자체가 하나의 굉장히 비장한 분노 속에 있었으니까 그 자체가 사람을 굉장히 힘들게 만드는 거죠. 까놓고 말하면, 집회에 나가고 찬 바닥에 앉아 맨날 듣던 구호에 그 노래를 부르면서 똑같은 걸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거죠. 세상은 오히려 점점 빨리 바뀌어 가고 자본의 힘 같은 것도 커져 가는데 운동하는 방식은 왜 그대로일까. 다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4학년 때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내려놨어요. 대학생활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은 셈인데 그걸 놓았을 때는 어떤 심정이셨나요. 김여진: 그냥 진짜 멍-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돈은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내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죽어도 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약간 우울증처럼 거의 방에서 안 나왔고, 학교를 더 다니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4학년 2학기에 다들 취업 준비할 때 저는 밀린 학점을 들었죠. 지금 생각하면 뭔가를 원 없이 했다는 거, 그리고 그렇게 자길 꽉 채웠던 걸 통째로 싹 비워냈다는 게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서 연기라는 것에 푹 빠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떨 것 같으세요?김여진: 그런 게 인생의 비밀인 것 같아요. 꼭 ‘무엇을’ 해야 한다가 아니라 그게 뭐든 인연이 닿는 거죠. 그 때 만약 내가 연극이 아니라 콘서트를 보러 갔다면 음악에 빠졌을 지도 몰라요. 대학 4년 동안 공연, 콘서트 이런 데를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웃음) 그런데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갔더니 포스터가 보이고 연극이 재밌어서 그냥 하게 된 거예요. 전혀 모르는 세계에 들어가 無에서 하나씩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어땠나요. 김여진: 제가 처음 봤던 그 연극을 하는 극단에 들어가 아침에는 포스터 붙이고, 오후랑 저녁 공연을 하루 두 번씩 매일 봤어요. 우리가 꼭 ‘뭘 하려면 어느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뭐가 됐든 하나를 끝까지 파면 알게 돼요. 저는 그 두 달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같은 공연을 매일 재밌게 보면서 매 회마다 느껴지는 차이를 봤어요. 낮과 저녁 공연이 다르고, 배우 한 명이 바뀌면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되고, 대사를 일 초 빨리 혹은 늦게 치는 데 따라 웃길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어요. 그걸 스스로 익힌 거죠. 그렇다 해도 처음 무대에 섰던 건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였지만. (웃음) 그 제가 봤던 연극에 들어가 그 역할을 1년 했어요. 같은 역할로 7백 번 무대에 선 거죠. 그렇게 해 본 경험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한 번도 연기를 배워본 적이 없지만 제가 하고 싶은 연기가 있는 거죠. 사실 연기라는 게 유명한 누군가에게 배운다 해서 궁극적인 답을 찾을 수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김여진: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분명히 효과는 있어요. 그런데 스스로 터득해야 되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표정이 어떻고 감정이 어떻고 발음이 어떻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요. 로버트 드 니로처럼 발음이 안 좋은 배우가 어디 있어요. 하지만 자기가 뭘 표현하고 싶은가가 확실하면 돼요. 그게 전달되고, 사람들이 거기 매력을 느끼면 되는 거죠. <H3>“<100분 토론> 출연시 염두에 둔 것은 잘 듣고 말하는 것”</H3>
얼마 전 <100분 토론>에 출연하셨잖아요. 토론 프로그램은 약간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자리인데 잠시라도 출연을 망설이지는 않으셨나요. 주제가 “대한민국의 희망과 소통을 말한다”였는데 어떠셨나요. 김여진: 부담은 없었고 딱, 시간만 봤어요. 시간이 비어 있으면 하고, 아니면 못 하는 거. 사실 무슨 얘길 해야 할지 질문지도 한 번 제대로 안 보고 그냥 갔는데, 옆자리에 앉으신 진중권 씨를 보니 준비를 이렇게 많이 해 오셨더라고요. A4 용지에 자잘한 글씨가 막 써 있고, 그래서 전 아무것도 없는 백지만 보고 있다가 심심해서 딱 한 줄을 썼어요. “웃으며 끝까지”. 진중권 씨도 그걸 보더니 웃으시더라고요. (웃음) 제가 염두에 둔 것도 잘 듣고 말하겠다, 묻는 말에 잘 대답하겠다,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하겠다, 웃으면서 하겠다는 것 밖에 없었어요. 혹시 버럭 화가 나면 어떡하지, 그럴 땐 이 글을 보자 싶어서 써 놓은 거죠. 그런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화 날 일은 없었어요. 방송을 보는 입장에서는 화가 나는 순간도 있던데요. (웃음) 태도가 고압적이거나 상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패널도 계셨고요. 김여진: 저는 재미있었어요. (웃음) 사실 화 낼 필요가 없어요. 나는 내 생각이 옳듯이 저 사람은 당연히 자기 생각이 옳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생각을 쭉 들어보면 논리적으로도 다 맞아요. 그 전제가 나와 다른 거죠. 그래서 상대가 볼 때는 내가 답답하고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일 수가 있어요. 그럴 땐 아무리 이야기를 오래 나눈다 해도 서로에게 설득되진 않겠지만 조금 이해는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의 공격틀 속에 있는 허점을 찾아볼 수도 있고, 그러면서 그 전제를 다시 논의해볼 수도 있죠. 그러려면 일단 먼저 들어야 하고,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한데 방송이나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그렇게 가기가 힘들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입장이 절대적으로 다른 상대에게 소외된 노동자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이런 분들께서 신경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였어요. 보통은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하고 말 텐데 어느 정도 순수한 믿음이 있어야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김여진: 저는 모든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다 믿고, 다 믿지 않기도 해요. 사람은 늘 바뀌고 변하는 거니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브런치>에 이재오 장관님이 나오셨을 때 홍대 청소노동자 분들 문제를 처음 이야기했더니 내 관할이 아니라고 빼셨죠. 그런데 그에 관련된 “그 분하고 친하시죠?” 까지 했더니 그렇다고, 한 번 얘기 하겠다는 대답을 주셨거든요. 그러면 그 분이 어떤 행동을 하시든 안 하시든 밑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사가 나오고, 용역업체 사람들이 그걸 볼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 보면 굉장히 강고해 보였던 벽이 살짝 흔들리긴 해요. 다들 안 될 거라고, 제가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 정말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시도 자체가 분명 의미가 있어요. 결국 2011년 대한민국 사회에 맞도록 효과적인 투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우이기 때문에 더 큰 힘을 얻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여진: 네. 처음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방문하고 나오면서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는 미디어몽구라는 친구를 만나서 부탁한 게 있어요. 내가 블로그에 글을 하나 쓸 텐데 리트윗 한 번 해 줄 수 있겠냐고. 그 때 그 친구는 저보다 훨씬 팔로어가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이럴 땐 진짜 내가 조금 더 유명하고 인기 있는 배우면 좋겠어. 그럼 훨씬 더 파급력이 클 텐데” 라고 약간 울컥해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 블로그 글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점점 파급력이 커지는 걸 보고 배우이기 때문에 유리한 게 있구나,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방문하고 쓰신 글 중에 당시 투쟁에 대해 방관적인 입장이었던 홍대 총학생회장을 만나신 내용이 있었어요. 20대 때 현장에서 가열차게 싸웠던 사람이 새로운 20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 또한 상처받고 있음을 들여다봤다는 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게 느껴졌어요. 김여진: 사실 지금 20대는 사회의 최대 피해자에요. IMF 때 부모님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겪었고,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지만 미래가 불우하고 불행하고 불안하니까 자기 공부 외에 다른 문제에 눈을 돌릴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패기 없고 현실을 볼 줄 모른다며 멋모르는 소리를 하니까 얼마나 미울까 싶어요. 홍대 같은 경우에도 그 친구의 입장에선 분명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건데 조금만 다르게 봐 줄 수 있겠냐고 제안한 건데, 실제로 현장에 와 주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거든요. 그런 게 그 친구를 뽑은 홍대의 모든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놈의 세상을 만들어놓은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지금 자기가 가진 자리에서 무엇을 내놓아 세상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자연인 김여진을 드러내는 게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고, 요즘 같은 때는 이 사람이 방송에 나올 수 있겠냐고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김여진: 지금 방송에 나오잖아요. (웃음)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이러는 여배우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믿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미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모르니까 두려운 거죠. 하지만 저는 저답게 살고 있어요. 운동만 하면서, 혹은 연기만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고 두 가지를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들이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이나 철학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저는 분명 드라마가 갖고 있는 힘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인종차별적이거나 장애인을 차별하는 드라마에 대해 어떤 관점이 서 있지 않으면 모르고 그걸 하게 되어 세상에 해가 되는 연기를 할 수도 있거든요. 세상에서 ‘여배우’라는 존재가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환상의 대상이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비춰지는데 저 같이 엉뚱한 배우 하나 정도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냥 여자, 사람, 배우. 원래 내가 몸담고 있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삶의 범위를 넓혀가는 데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으신가요. 김여진: 저는 오히려 겁을 낼 이유를 물어보고 싶어요. 해 보니까 별 거 없어요. 해 보면 재미있고, 또 그만큼 내 삶이 풍부해지는 건데 뭐가 그렇게 두렵겠어요.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어차피 평생 살다가 한 번은 죽어야 하고 당장 오늘이라도 길 가다 차에 치어 죽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겁을 내는 걸까 싶은 거죠. 두려움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핵심이에요. 사실 지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20대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두려움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얘길 해 주고 싶으세요? 김여진: 물에 빠진 걸 예로 들면, 우리 땐 한 가슴팍까지 와서 대충 이렇게 허우적거리다 보면 헤어 나올 수도 있었어요. 일단 대학생들의 취업이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수심이 더 깊어졌고, 그래서 잘못 빠지면 죽을 수도 있다고 쳐요. 두려운 건 이해를 하지만 어쨌든 수영을 배우면 안 죽는다는 거죠. 그럼 수영에 관한 책을 읽고 동영상을 분석하고 리포트를 쓰는 대신 직접 물에 뛰어 들어가 볼 필요가 있거든요. 물에 발을 안 담근 채 수영을 할 수 있길 바랄 수는 없어요. 뒤에선 사자가 쫓아오고 앞은 절벽이면 뛰어내려야 되는데 안 뛰어내리고 망설이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거든요. 지금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상위 8% 밖에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 남들 가는 길에서, 그 똑같은 경쟁 대열에서 어떻게 더 올라가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다른 걸 상상하고 세상에 없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낫죠. 확률로, 통계로, 수학적으로 따져도 딱 나온다니까요 답이. (웃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최지은 five@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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