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오주연 인턴기자, 이민아 인턴기자]서울대학교 경영대 수플렉스홀에 모인 100여명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연단에 선 그가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기술을 구현하기 전에는 그것은 다만 하나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기술을 제품으로 만들었을 때 기술은 비로소 나에게로 와서 가치가 되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김춘수의 '꽃'을 개작해 선보인 그는 국내 대표 전자결제 시스템인 '이니시스'를 창립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다. 지난 12일 서울대 수플렉스홀에서 권 대표를 비롯한 정지훈 관동의대 융합의학과 교수,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 8명이 '기술의 퀀텀점프'를 주제로 18분씩 릴레이 강연을 하는 '테드엑스 서울대(TEDxSNU)'가 열렸다. 강연자들은 사회발전을 이루는 데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약적인 성장과 도약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 퀀텀점프를 주제로 한 릴레이 강연에서 첫 번째 강연을 맡은 이는 권 대표였다. 아이디어만 있고 기획력ㆍ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벤처회사를 돕는 벤처인큐베이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권 대표는 "'기술' 발전만이 퀀텀점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기술로 사회에 헌신하겠다는 '의지'와 기술을 구현하고자 하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대표는 이어 "좋은 생각, 좋은 이론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이를 제품화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며 물에서 이착륙을 하던 수송기가 땅에서 이착륙을 하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충격을 흡수하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던 때 수송기는 물에서 뜨고 물에 착륙해야 했다. 물에서 놀던 수송기를 땅으로 끌어 올린 건 철도에 쓰이는 기술이었다. 독일 메서슈미트사는 철도의 충격완충장치 기술을 활용해 땅에서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기 ME323을 만들어냈다. 수송기 이야기를 마친 권 대표는 "과거의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관심"이라면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정신,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개작해 낭송하며 강연을 마쳤다. 사회가 퀀텀점프를 하는 데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 강연자는 권 대표 뿐이 아니었다. 2부의 문을 연 정지훈 관동의대 융합의학과 교수는 "기업뿐 아니라 기술도 '사회적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2004년 쓰나미 이후 인도네시아에 기증된 인큐베이터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국제 구호 단체들이 한 대에 4만불이 넘는 신생아 인큐베이터 8대를 인도네시아에 기증했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찾아가보니 기증된 8대 모두 고장이 나있었다. 수리 설명서가 있었으나 현지에서 인큐베이터에 쓰인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고장난 채로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이후 자동차 내부부품을 이용해 만든 인큐베이터가 다시 인도네시아에 전달됐다. 헤드라이트가 신생아의 몸을 덥히는 발열판이 되고, 대시보드 팬이 필터와 통풍기능을 담당하는 새 인큐베이터는 내부에 쓰인 부품 모두가 현지에서 쉽게 조달 가능한 자동차 부품이었다. 정 교수는 "인도네시아에 필요한 건 수만불짜리 기기가 아니라 그 지역에 맞게 맞춤화된 기술이었다"며 "기술이 필요한 지역을 고려한 적정 기술, 착한 기술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권 대표, 정 교수 외에 전성민 서울대 경영학 박사과정, 신현욱 팝펀딩 대표, 이준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권정혁 KTH 기술연구소 에반젤리스트, 이재석 아이크리에이트 창의성연구소 대표, 황리건 마이크로소프트 에반젤리스트 등이 참석해 릴레이 강연을 펼쳤다. 4시간에 걸친 강연 시간 내내 사람들은 조명을 받고 연단에 선 강연자들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청중들 사이에서 때론 환호가, 때론 웃음이 터져나왔다.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을 전파한다'는 취지로 미국에서 시작된 TED의 한국판 행사, 테드엑스 서울대는 대성황이었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승재씨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마주해야 하는 나 같은 직장인에게 이번 테드엑스 서울대는 생각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8명 강연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로운 충격이었고, 어느 자리에 있든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정은 기자 jeun@오주연 기자 moon170@이민아 기자 ma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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