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ㆍ한용운ㆍ심훈 모두 '뿌리친' 학자들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김현희 기자]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할 한국 근대문학 걸작들을 펼쳐놓고 2년 가까이 골머리를 앓았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심훈의 '그날이 오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진달래꽃'. 하나같이 귀한 작품들이었기에 이들의 고민은 깊었다. 딱 하나만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한 작품만 남기고 나머지를 '떨어뜨리는' 일은 곤혹스럽고 어려웠다. 결국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남았다.문화재청(청장 최광식)은 2009년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 문학작품을 골라 문화재로 등록하는 작업을 했다. 국문학자와 국어학자, 서지학자 등 전문가 20여명을 모아 근대문화재분과 위원회를 꾸린 문화재청은 먼저 해방 이전의 중요 작품들을 한 데 모아 목록 만들기에 나섰다. 이어진 현지조사와 수차례에 걸친 검토회의, 자문회의, 심의 끝에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최종 낙점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4일 시집 '진달래꽃'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과 중앙서림 총판본을 근대 문학작품 최초로 문화재로 등록했다.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인 권영민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만나 시집 '진달래꽃'이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시집 진달래꽃 문화재 등록과 관련해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 근대시기 한국인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희소성이 있는지, 사람들에게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작품인지 등을 고려해 문화재 등록 대상을 선정했다"면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을 최종 선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또 "윤동주, 심훈, 염상섭, 이광수, 한용운의 작품을 비롯해 문학적 가치가 높은 근대 문학작품 상당수가 문화재 후보에 올랐으나 소장의 문제, 희소성의 문제 때문에 최종 선정되지는 못했다"면서 미처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2009년 4월 근대 문학작품의 문화재 등록을 위한 첫 번째 작업, 문학분야 목록화가 시작됐을 때 유력한 후보에 오른 건 육필 원고들이었다.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가면서 후배한테 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본 원고, 1931년 출판을 위해 총독부 검열을 신청했다가 걸려 빨간펜이 그어진 그대로 남아있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후보로 올랐다. 문학사적 가치, 희소성에서 부족함이 없는 이들 작품은 소장 문제 때문에 문화재 등록 대상 1순위에서 제외됐다. 특정 대상을 문화재로 지정하려면 그 대상이 국내에 있어야 하는데 심훈의 원고는 현재 미국에 있는 자녀들이 소장하고 있어 문제가 됐고, 윤동주 원고는 소장자가 이를 금고에 넣어 두고 해외에 나가 있어 당장 문화재 등록이 불가능했다. 육필 원고 다음으로 검토된 건 출판물이었다. 출판물을 대상으로 목록화 작업을 다시 하고 그 가운데 보존 상태를 직접 확인해 추린 게 한용운의 '님의 침묵',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소설 등이었다. 소설은 희귀성이 떨어져 문화재 등록 대상에서 제외됐고, 남은 건 한용운과 김소월의 작품이었다. 학자들은 사진기를 들고 '님의 침묵', '진달래꽃' 소장처를 일일이 찾아나섰다. 박물관, 도서관, 연구소, 개인 소장처 등 곳곳을 다니며 학자들이 얻은 것은 두 가지였다. 한용운의 작품은 비교적 보존이 잘돼있고 그만큼 많이 남아있어 희귀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진달래꽃' 초간본으로 알려진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과 같은 날짜에 인쇄된 또 다른 총판본, 중앙서림 총판본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왼쪽)과 중앙서림 총판본(오른쪽). 가운데는 시집에 실린 시 '진달래꽃' 본문.

희귀성 문제 때문에 '님의 침묵'은 자연스럽게 문화재 등록 대상에서 빠지게 됐고 화두는 '진달래꽃 진짜 초간본은 어느 것이냐'로 옮겨갔다. 총판매소가 한성도서주식회사와 중앙서림으로 서로 다른 두 '진달래꽃' 시집의 인쇄날짜는 1925년 12월20일로 같았다. 잘못 쓴 글자들이 있는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이 더 먼저 나온 것이라는 의견과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기 전의 표기법 'ㅺ'을 쓰고 있는 중앙서림 총판본이 더 먼저라는 의견이 맞섰다. 당시엔 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기 전부터 'ㅺ'과 'ㄲ' 표기를 구분없이 썼으므로 표기법으로 초간본을 따지는 건 소용이 없다는 의견과 일제시대엔 책을 펴낼 때마다 총독부에 납본을 해야했으므로 인쇄날짜에 오류가 있을 수는 없고 둘 다 초간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근대문화재분과 위원들이 모두 모여 여러 번 검토회의를 한 뒤에도 어느 것이 초간본인지 혹은 둘 다 초간본이 맞는지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과 중앙서림 총판본이 함께 문화재 등록 예고가 되자 학계에서도 논쟁이 시작됐다. 답 없는 논쟁이 계속되자 근대문화재분과 위원회는 국어학자, 서지학자, 진달래꽃 총판본 소장자들을 모아 관계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었다. 그래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결국 문화재청은 문화재분과 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두 총판본 모두를 문화재로 등록 고시했다.
같은 날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에서 만난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 김종욱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두 총판본이 모두 문화재로 등록된 데서 세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서 "첫째는 기록이 별로 안남아 있는 당시 출판 과정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총판매소 두 곳에서 같이 찍어낼 만큼 '진달래꽃'이 인기가 많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는 것, 셋째는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는 두 '진달래꽃' 총판본을 서지학적으로 엄밀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과제를 줬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교수와 김 교수 목소리에선 '진달래꽃'이 문화재로 등록됐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보단 주옥같은 나머지 작품을 '떨어뜨린' 데 대한 아쉬움이 더 많이 묻어나왔다. 근대 문학작품 문화재 등록을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지 묻자 권 교수와 김 교수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1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근대 문학작품을 문화재로 등록했다는 것은 근대 문학작품이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소장 문제로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한 윤동주나 심훈의 작품에 대해선 계속 문화재 등록을 위한 논의를 해나갈 것입니다. 근대 문학작품에 문화재라는 값진 옷을 입히는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성정은 기자 jeun@김현희 기자 faith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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