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압박에 재계 골머리...'할만큼 했다'부터 '정부부터 바꿔야'까지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90도 인사가 칼끝처럼 매서웠다."지난 8일 오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은 이재오 특임 장관의 '90도 인사'를 바라보는 재계의 심정이 편치만은 않다. 이 특임 장관의 전경련 방문이 의례적인 인사 차원을 넘어 이명박 대통령의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재계 압박이 당초 예상보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재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대통령의 연이은 발언에 일련의 스케줄이 재계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는 그물망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미 그룹별로 상생 방안을 속속 내놓았지만 정부의 압박 강도는 완화되긴 커녕 오히려 가속도가 붙은 양상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원점부터 다시 상생 방안을 강구해야 하나"하는 절박감 마저 보이고 있어 향후 정부와 재계의 줄다리기가 불꽃이 튀길 전망이다. 9일 오후 5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회의는 사실상 13일 열리는 청와대 회동에 대응하는 성격이 짙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기아차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중소기업 상생에 협조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미 대기업들이 상생 방안을 발표한 터라 전경련 회의에서는 정부와의 눈높이를 맞추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정부의 압박에 대한 서운함도 터져 나올 수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할 말은 많겠지만 대기업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고 선을 그었다.재계의 시선은 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 온통 쏠려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8일 30여명의 중소기업 대표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상생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점도 내심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이달 말 일부 제도개선 등을 포함한 대·중소기업 협력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이 대통령이 중소 기업들을 먼저 만난 것 자체가 재계로서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중소 기업들을 먼저 만난다는 것은 대통령이 대기업에 할 말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할만큼 했다는 서운함도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재계는 상생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앞다퉈 중소기업간 상생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은 1조원에 달하는 '협력사 지원펀드'를 마련키로 했으며, 현대차와 LG그룹도 각각 1조1544억원, 2500억원에 달하는 2·3차 협력 기금을 제공키로 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속도가 너무 빠르다"면서 "지금 몰아치는 것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피를 빨아먹는 부도덕한 조직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고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기업 임원은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 사회의 기틀은 기업보다는 정부에서 먼저 만들어야 하는 사안"이라며 일침을 놨다.이정일 기자 jayle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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