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할인 등 '미분양 파격조건'에 기존 계약자 항의 빗발
◆한 아파트 계약자들이 건설업체를 찾아가 '사기분양'이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선분양제도는 집값 상승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최근같은 경기침체기에는 소비자와 건설사간 갈등을 양산한다. 미분양이 쌓일 경우 건설업체는 할인분양 등의 방법으로 분양률을 높이려 하고 기존 계약자들은 같은 할인률을 적용해 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상담받을 때는 분명 80%정도 분양이 돼서 남은 물량도 별로 없다길래 서둘러 계약했죠. 근데 입주해보니 분양이 20%도 채 안돼있는 거에요. 게다가 남은 물량을 '체험세대'라는 명목으로 주변 시세의 절반 이하로 전세를 놓아버리니, 우리같은 입주민들은 이제 전세도 못놓고, 아파트 이미지도 나빠지고,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대구의 한 아파트 한 입주자)분양가 파격할인, 임대전환 등 건설사들이 미분양 해소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놓으면서 입주민들과의 갈등이 깊어질대로 깊어지고 있다. 분양가 혜택을 받지 못한 기존 입주민들이 할인정책에 반발해, 분양가 인하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대구 수성구의 S아파트 입주자비상대책위원들은 최근 서울 대형 건설사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들은 2005년 분양당시 건설사가 분양률을 속여 계약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미분양 해소를 위해 전체 467가구 중 80%를 분양가의 25%만 받고 전세를 놓아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 아파트가 '입주체험'으로 내놓은 전세가는 152~165㎡형 1억3000만~1억6000만원으로 주변시세의 반값도 안된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원래는 2억5000만원~3억6000만원까지 받아야 정상인데, 이 아파트의 경우는 거저주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당시 미분양 상태가 오래갔는데 싸게 전세를 놓는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몇 주만에 물량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이에 입주민들은 기존 계약한 주택들도 모두 체험세대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D아파트도 기존 계약자의 불만이 거세다. 총 2000채 대단지로 현재 분양가는 3.3m²당 900만원대다. 시공사가 지난해 1월 신용위험평가 결과 D등급으로 퇴출 판정을 받게되자 미분양을 우려해 분양가를 기존 3.3m²당 1300만원에서 1120만~1163만원으로, 다시 900만원대로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입주민들은 "똑같은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몇 달 사이에 분양가가 8000만원이나 차이가 생겼다"며 "계약조건을 최소한 신규계약자들과 비슷한 조건으로 조정을 해주거나 하는 조치를 취해줘야 할 것"이라 소리높이고 있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일산의 J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 소속 주민들이 1000여명 모여 분양가 인하 등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하기도 했다. 4000가구에 달하는 메머드 아파트는 8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분양권 가격이 최초분양가 이하로 떨어지자 입주예정자들이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가 인하와 중도금 무이자 기간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건설사들을 상대로 한 계약자들의 쇄도하는 항의세례는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며 급증하는 추세다. 이는 선분양제도라는 독특한 주택공급구조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주택이 지어지기 전에 미리 공급된 후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 건설사는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할인 분양으로 처분에 나서고, 기존 계약자들은 똑같이 할인해 달라고 주장하며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입주민들은 직접적으로 분양가 할인을 요구하기도 하고 건설사가 미분양분을 임대주택 등으로 돌릴 경우 재산가치가 하락한다며 반대하기도 한다.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시장 침체로 미분양이 생겼는데 그렇다고 다 지은 집을 비워놓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그렇다고 한 단지의 입주민들의 요구만 들어주기도 힘들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 단지 주민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다른 미분양 단지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가 지은 아파트에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파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기존 입주가구가 적은 경우는 분양가 할인 등을 소급적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단지는 미분양을 그냥 놔두기에도, 소급적용하기도 자금 부담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양시장이 워낙 침체기이기 때문에 입주민들과의 갈등도 깊어지게 됐다"며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이상 명확한 해결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이같이 입주민과 건설사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현상은 미분양 해소를 위해 분양가를 할인한 곳에서 모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뽀족한 대책도 없어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계약제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며 계약자나 건설업체나 모두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전문가는 "선분양 제도하에서는 소비자들이 고가의 주택 계약사항을 지킬 수 있는지를 심도있게 고민한 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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