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DNA]‘근자성공과 혁신경영’의 정신, 100년 두산의 틀 만들다

재계 100년-미래경영 3.0 창업주DNA서 찾는다 <5>두산그룹 박두병 회장①1896년 ‘박승직 상점’ 개설 신뢰로 큰 성공1936년 박두병 회장 입사 근대적 기업 육성맥주사업도 진출 현실 안주 대신 도전의 삶

연지동 자택에서 두산 일가 가족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1936년경으로 추정). 앞줄 오른쪽 의자에 앉은 이가 매헌 박승직 창업주, 아기를 안고 있는 이가 부인 정씨, 뒷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연강 박두병 회장, 부인 명계춘 여사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1910년 10월 6일 저녁 8시.서울 종로 4가 자신의 집 사랑채에서 수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던 당시 46세였던 매헌 박승직 창업주는 안방에서 울리는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대번 사내아이임을 직감했다. 위로 딸만 여섯을 둔 그는 누구보다도 아들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경술년, 술월, 술시 삼자 술자에 태어난 대길할 운을 타고났다는 그는 후일 두산그룹 초대회장에 오른 박두병 회장이다.◆'근자성공'의 교훈을 되새기다= 1864년 경기도 광주군 탄벌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박승직 창업주는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상인이다. 10대 초반 무렵 등잔용 석유와 피물을 등짐을 지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장사 수완을 익히기 시작한 그는 해남과 평안도ㆍ경상도ㆍ강원도 등 전국을 떠돌며 모은 돈으로 1896년 8월1일 서울 종로 4가 15번지에 두산그룹의 모태인 '박승직상점'을 개설했다.좌우명 '근자성공(勤子成功: 부지런한 자가 성공한다)'이라는 사자성어를 늘 가슴에 새겼다는 그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신뢰와 성실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는 한편 전국에서 들어온 품목과 더불어 무역을 통해 들여온 외국품목까지 취급하며 동대문과 종로 일대에서 '배오개의 거상'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하지만 1930년대 이미 70세를 넘어선 고령이 된 박승직 창업주는 더 이상 경영에 매진하기 어려워지자 아들 박두병 회장을 불러들인다. 단순히 나이 차원이 아니라 자신은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됐고, 급변하는 시대에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회사로 들어오라는 부름을 바로 따른 것은 아니었다. 당초 3년만 조선은행에서 근무하기로 했던 박두병 회장은 1년을 더 넘긴 뒤 1936년 4월 16일 상무로 입사해 본격적인 세대교체 작업을 시작한다.

조선은행 재직시절의 연강 박두병 회장

◆기업 경영의 혁신 일으키다= 아버지에 이어 회사를 이끌게 된 박두병 회장은 박승직상점을 근대화 된 기업체로 변신시키고자 노력했다. 출근부 작성을 통해 직원들이 시간은 곧 신용이자 생명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하는 한편, 업적평가를 정확히 해 상여금을 차등지급하고 유능ㆍ성실한 직원을 우대했다. 적성에 맞는 직원을 적지에 배치하면서 여직원 고용을 늘리기도 했다. 직원들의 복리후생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그의 조치는 당시로서는 혁신에 가까웠다. 또한 직물류의 가격과 수요공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정보수집을 위해 서울과 지방은 물론 해외시장 정보까지 물색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가 이끈 박승직 상점은 1938년 상점 창립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그는 1933년 12월 소화기린맥주에 한국인 주주로 참여한다. 사업에 관한한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인 그가 박승직상점의 취급물품과 전혀 다른 맥주사업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의아스러웠지만, 한국인 회유책의 일환으로 당시 상업계에 유력자였든 박두병 회장을 참여시켜 판로를 확보하려는 일본측의 의도가 작용했다.하지만 6.25전쟁 후 국고로 귀속된 소화기린맥주 관리책임자로 박두병 회장이 임명됐는데, 그는 단시일 내에 공장을 가동시켰다. 후일 맥주사업은 박승직상점에서 이름을 바꾼 두산상사와 함께 두산그룹 출범의 토대가 된다.박두병 회장은 생전 주변에 "우리는 하나의 단계에 집착하지 말고 다음, 다음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생성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만 안주해서는 적응력을 잃어버린다. 항상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인간 만이 안이에서 탈피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헤르만헤세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고 한다.두산그룹 고위 관계자는 "1대에서 2대로 경영체제가 변화하는 동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두산그룹 기업 문화는 모두 이 시기에 결정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가족간의 우애, 인화, 시대의 흐름에 맞춘 사업구조 개편, 전문인력 우대 등 모든 것들이 박승직 창업주와 박두병 회장 시절에 이뤄진 것으로, 특히 박두병 회장은 성장을 위한 변화에 모든 것을 내걸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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