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택 회장·황창규 사장등 10여명 경영일선서 물러나일각선 "능력 재발휘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지적도[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올해는 유난히 '용퇴'라는 말이 많이 쓰였다.용퇴는 사전적인 뜻으로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남 ▲후진에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하여 스스로 관직 같은 데에서 물러남 등 두 가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과 관가에서 불어닥친 용퇴 열풍은 산업계에 이어져 '용퇴'한 기업인들도 많았다.이구택 포스코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에서는 '미스터 휴대폰',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이기태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 황창규 기술총괄 사장 등 10여명의 경영인들이 한꺼번에 용퇴했다. 도 서병기, 최재국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황기수 코아로직 사장, 제환석 코오롱 패션부문 사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 송재병 현대미포조선 사장 등이 용퇴한 기업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떠나는 모든 기업인에게 용퇴가 붙은 것은 아니다. 언론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회장은 '퇴진'을, 올 연말 자리에서 물러나는 손욱 농심 회장은 '사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용퇴라는 단어는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들에게만 쓰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인의 용퇴가 공무원, 정치인의 그것보다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용퇴한 기업인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20년 넘게 종사하며 얼굴마담 역할을 한 스타 CEO들이다. 회사의 브랜드나 마찬가지인 그들을 내보내는 것은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떠나보내는 이유는 기업의 최우선 가치인 수익 창출을 위해서 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CEO의 리더십으로 수년간 성장세를 구가하던 회사가 어느 날 갑자기 매출이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CEO는 변한 것이 없는데 아무리 아이디어를 짜내고 갖가지 방법을 써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CEO의 능력을 신뢰하던 조직원들이 서서히 불만의 목소리를 키우더니 CEO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이러는 사이 회사 실적은 아래로 더욱 곤두박질 친다. 그대로 놔두면 악순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단기적으로 큰 충격요법이 필요한 상황. 이럴 때 기업이 쓰는 카드가 CEO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스타 CEO라면 효과는 더욱 크다. 그에게 밀려 움크리고 있던 후임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조직 분위기를 180도 바꿀 수 있다. 부진했던 실적에 대한 책임도 고스란히 용퇴하는 CEO가 짊어지고 가니 회사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CEO의 용퇴후에는 회사 실적도 향상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며, 포스코도 글로벌 철강업계중 가장 위험 없이 고비를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점을 놓고 본다면 CEO의 용퇴는 새로운 CEO의 영입 만큼이나 기업의 실적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다만 당하는 개인의 생각은 다르다. 용퇴한 기업인들은 회사를 정상화 시키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스스로가 불명예 퇴진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CEO는 자신이 키운 회사와 갈등 관계로 변질되기도 한다. 떠나는 순간까지 회사를 위해 헌신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와서 보니 자신은 회사에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라는 자괴감도 든다.재계 관계자는 "'퇴장의 미학'이 전무하다시피한 한국에서는 용퇴한 기업인들을 무능력자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시선이 더욱 그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개선돼야 한다"면서 "특히 이들이 다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인프라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채명석 기자 oricm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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