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영화 '애자'의 정기훈 감독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남자 감독이 어떻게 모녀 사이의 심리를 이렇게 섬세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 아시아경제신문과 만난 정기훈 감독은 이런 질문에 "주위에 저를 아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을 한다"며 껄껄 웃었다. '애자'는 문제아 딸과 고집불통의 어머니가 그리는 혈육의 진한 애증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독특한 영화다. 가족 이야기를 그리되 구질구질한 신파로 흐르지 않고, 눈물을 자극하되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주연배우 김영애의 설명처럼 '애자'는 여성관객들에게 유난히 공감을 살 수 있는 작품이다. 정기훈 감독은 "다 큰 여자의 성장이야기를 생각하다가 '애자'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의 주인공인 애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왕래하던 소설가 지망생을 모델로 했다. 극중 애자의 어머니는 정 감독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 "가운데 이름이 '애'자인 친구인데 그 친구가 쓴 인생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어서 만나본 후 이야기를 한번 엮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가족과 일,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서 모든 걸 담으면 트렌디한 영화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 큰 여자의 성장이야기도 어차피 관계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가장 친밀하고 애증관계가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다 모녀 이야기로 압축하게 됐죠."가족 이야기는 흔히 신파로 흐르기 쉽다는 점을 정 감독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너무 뻔하고 통속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뻔해서 돌아볼 시간이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그는 "잊고 있던 것을 환기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제목도 반대가 많았다. 촌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애자'라는 주인공 이름을 지을 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자'자를 붙인 정 감독에겐 그다지 신경 쓰이는 지적은 아니었다. 한자로 쓸 때 '상 중에 있는 자식' '슬픈 아이'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도 정 감독의 마음을 끌었다. 결국 반대하던 사람들이 적당한 제목을 내놓지 못하자 제목은 '애자'로 최종 낙점됐다.
20대 초반부터 14년간 조감독으로 일해 온 정기훈 감독은 오랜 수련 시기를 거치며 내공을 쌓아왔다. 신인감독치곤 현장 운영이 매우 매끄러웠다는 주위의 평가도, 치밀한 사전분비와 신중하고 차분한 연출도 그러한 경험에서 나왔으리라. "모녀관계를 그리려니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더군요. 그래서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인터뷰를 많이 해보자고 했죠. 1년 동안 아마도 400쌍 정도의 모녀를 만났을 겁니다. 인터뷰 자료만 두 박스가 됩니다. 물론 제 누님과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애자'의 모든 이야기는 그 속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정기훈 감독은 흔히 말하는 기나긴 도제시스템과 엘리트코스(시나리오 공모전)를 거쳐 14년 만에 감독 데뷔의 꿈을 이뤘다. 케이블 TV가 제시한 연봉 5000만원의 유혹을 뿌리칠 정도로 감독의 꿈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쓴 시나리오로 당당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어렸을 때 꿈인 감독이 되고 나니까 '이제 내 꿈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한 정기훈 감독은 "직업을 꿈으로 삼는 건 허무한 일"이라며 웃었다. 정기훈 감독의 목표는 이제 "대중과의 소통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인가"다. 목표의 시작점으로서 '애자'는 일단 '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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