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체험]길에서 희망을 줍다

13일 종로의 ㅇ 고물상 (중구 신설동 소재)에서 양국철(梁國哲·74) 할아버지를 만난 건 오전 11시께였다. 이미 오전시간 작업을 끝내고 온 할아버지는 수거한 종이·박스 등을 고물상에 내려놓았다. 전날 밤과 오전에 모은 박스와 종이로 9000원을 받았다. 그는 “비싼 종이를 주워서 조금 낫네”라며 웃음 지었다. 평소에는 “한번에 5000원 안팎으로 받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 일을 한지 이제 1년여. 조선족인 그는 중국 헤이룽강(黑龍江)에서 농사를 짓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자식들을 따라 2007년 한국에 정착했다. 건물 경비를 하다가 해고당하면서 폐지 수거 일을 하게 됐다 그는 오전 8시쯤 일상을 시작한다. 집 근처에 세워둔 리어카를 끌고 창신동 완구거리 일대를 다니며 박스를 줍는다. 대여섯 시간을 다녀야 리어카 한 대를 가득 채울 수 있다. 1kg당 박스는 60원, 신문은 100원이다. 한 대 가득 실으면 100kg가량, 이렇게 오전 오후 두 번을 해도 하루 1만원 남짓이다. 완구거리 일대에만 박스를 줍는 사람들이 5~6명은 된다. 경쟁이 치열해 부지런히 나서지 않으면 1만원도 챙기지 못 할 때가 많다. 가끔 애써 모은 폐품을 도둑맞는 웃지 못 할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오전 일과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쪽방에서 밥과 찌개 하나로만 끼니를 때운다. 막걸리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로 점심시간을 마무리 한 할아버지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거리로 나선다. 할아버지의 주 활동구역인 창신동 가구 거리에는 좁은 골목이 많아 리어카가 들어가기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구석진 곳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직접 발품을 판다. 그는 “자꾸 움직여야 박스가 생기지, 가만있으면 누가 가져다주나?”며 쉴 틈없이 움직였다. “그래도 중국보다 여기 사는 게 좋아. 여기가 돈 벌기에는 형편이 훨씬 낫지.”라며 웃었다. 주말에는 폐품이 나오지 않아 쉴 때도 많은데, 그럴 때면 교회에서 해주는 무료 의료 진료를 받기도 한다. 할아버지 한 달 수입은 30만원 남짓. 11개 방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길 쪽방에 산다. 월세로 내는 17만원을 제하면 생활비는 10만원이 조금 넘는다. 조선족이라 정부보조금조차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으로 시집온 딸도 식당일을 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어 할아버지를 돕기가 쉽지 않다.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사람이 돼서(귀화해서) 청소부 일이라도 하면서 ‘월급’받고 살면 좋겠다”며 “내 소원은 그게 다야”라고 전했다. 할아버지가 10시간도 넘게 움직여 번돈은 1만5100원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리어카를 끈다. 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양재필 기자 ryanfeel@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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