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자'의 고아성, 김새론, 박도연(왼쪽부터)이 20일 오후 프랑스 칸 해변에서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칸(프랑스)=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62회 칸국제영화제에 '소녀시대'가 떴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한 한불 합작영화 '여행자'의 세 배우 김새론(9)·고아성(17)·박도연(12)이 그 주인공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우니 르콩트 감독의 데뷔작 '여행자'는 칸영화제 공식 부문 특별상영작으로 선정됐으며 올해 강력한 황금카메라상 수상 후보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황금카메라상은 신인감독의 데뷔작에 수여되는 상이다.
아홉 살 소녀 진희(김새론)가 보육원에 입양돼 겪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여정을 그린 '여행자'에서 고아성은 보육원의 큰언니인 17세 소녀 예신 역을 맡았으며 박도연은 진희에게 큰 도움을 주는 숙희 역으로 출연한다.
◆ 김새론 "학교 땡땡이 치고 칸에 왔어요"
주인공 진희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김새론은 해외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나 "영화를 보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며 제법 어른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조나단 롬니는 김새론의 연기를 두고 "아주 뛰어나다(excellent)"며 "수줍음에서 분노를 거쳐 무례함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진희의 감정 변화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고 극찬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진희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또 다시 이별과 외로움,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훌륭히 소화해낸 것이다.
평범한 어린 소녀로서 1975년에 보육원에 버려진 아이 역할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 김새론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갔는데 감독님이 잘 얘기도 해주고 잘하라고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우니 르콩트 감독은 "진희는 외롭고 슬픈 아이니까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쉬운 역할이 아니니 집중을 잘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새론이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히 제몫을 다했다.
새론이는 친구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는 "아니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안 예쁘게 나와서"라는 게 이유였다. 엄마와 함께 칸영화제를 찾은 새론이는 칸에 대한 첫 인상을 "우리나라보다 깨끗한 것 같은데 강아지똥이 많은 건 별로 안 좋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 고아성 "'여행자'는 정말 하고 싶었던 작품이죠"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며 큰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고아성은 2006년 감독주간 초청작으로 칸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바 있으나 공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자'에서 고아성은 다리 거동이 불편한 17세 소녀 예신을 맡아 어른스러운 보육원 맏언니의 의젓한 모습과 첫사랑의 아픈 상처로 힘들어 하는 여린 모습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러나 고아성은 만족과는 거리가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네 번째 영화인데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이전 영화보다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예상했던 것보다 아쉬움이 앞선다기보다 제 연기에 대해 실망한 부분도 있었어요. 하려고 했던 것만큼 안 나와서요."
중학생 때 출연했던 '괴물'에 대해 고아성은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괴물'은 제 인생의 어떤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최대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괴물'을 만난 건 제 인생에 있어서 길이 남을 최고의 행복이고 행운이지만 그걸 맨 처음 만났다는 건 불행인 것 같아요. 최상의 환경과 사람들을 첫 영화에서 만났잖아요. 좀 더 노력한 다음에 실패도 맛 보고 성공도 맛 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기도 하죠."
고아성이 연기한 예신은 불쌍해 보이기 쉬운 역할이지만 단 한 번도 동정심을 불어 일으키는 모습을 내비치지 않는다. 우니 르콩트 감독이 "예신은 행복해 보여야 한다"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고생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이미 보였다"는 고아성은 "내가 정말 이런 작품을 하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그랬다"고 말하며 애착을 드러냈다. 고아성은 극중 맏언니 역할에 맞게 현장에서도 보모 역할을 하듯 어린 동생들을 도왔다.
'여행자'로 칸영화제를 찾은 고아성이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 박도연 "원래는 뮤지컬 배우에요"
숙희 역의 박도연은 세 배우 중 연기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 극중 누구보다 빨리 입양되기 위해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는 숙희처럼 박도연은 또박또박 자신의 출연작을 읊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뮤지컬만 해왔어요. '청년 장준하' '라이온킹' '애니' '소리도둑' '오즈의 마법사'에 나왔어요. '여행자'는 찍을 때는 잘 몰랐는데 완성된 걸 보니까 감동적인 장면도 많고 재미있었어요."
박도연이 '여행자' 오디션을 본 건 뮤지컬을 끝내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처음엔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촬영하다 보니까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재미있었다"며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한겨울에 추위와 졸음과 싸워야 했던 것을 꼽았다.
고아성은 칸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게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김새론과 박도연은 "해변에서 돌이랑 조개도 줍고 장난감 가게도 갔다"며 칸에서 보낸 즐거운 시간들을 떠올렸다.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행운이다. 비록 레드카펫을 밟지는 못했지만 칸영화제에서의 경험이 세 배우에겐 뜻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칸의 레드카펫을 수놓은 여러 스타들 속에서 '여행자'의 세 소녀는 그 어떤 여배우들보다 빛났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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