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당초 올해안에 사전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던 민영화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자금경색이 지속되면서 기업은행이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금융을 맡을 '대타'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기은 민영화가 연기되면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도 순차적으로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한 강연에서 "기업은행 민영화는 생각을 해 봐야할 문제"라며 "기업은행이 있어서 그나마 금융위기에 이정도로 대응하는 것 이나냐는 문제제기도 있다"고 말했다.
진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민영화 원칙을 바꾼 것으로 해석하긴 무리가 있지만, 당초 계획보다 민영화 속도를 더 늦추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건전성 악화를 우려한 소극적인 지원에 나서는 상황에서 기업은행마저 민영화할 경우, 중소기업에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31일 발표한 '제6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서 기업은행 민영화는 올해는 준비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산평가를 통한 매각예정가를 산출하고 주간사 선정 등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위원장이 정책금융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같은 계획은 금융위기가 진정된 이후로 연기될 공산이 크다는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기업은행 민영화 작업은 구조조적으로도 쉽지 않다. 정부가 작년말부터 올해초까지 총 1조원의 현물·현금 출자를 단행하면서, 같은기간 정부 지분율이 51%에서 63%로 12%포인트 높아졌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보유지분까지 합치면 74.9%에 이른다. 여기에 추가경정예산에 편성된 3000억원 현금출자까지 반영되면 지분율이 더 올라간다.
기업은행 민영화가 속도조절이 이뤄질 경우 당초 소수지분 매각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산업은행의 경우 정책금융공사법이 통과됐고, 금융안정기금 설치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예정대로 연내 준비를 거쳐 민영화 작업이 진행될 전망이다.
진동수 위원장도 "외환위기 이후 은행이 인수합병되고 문을 닫는 과정에서 가장 취약해진 것이 기업금융이라는 것"이라며 "산업은행 민영화의 바람직한 방향이 있다면 그런쪽 모델을 가져갈 수 밖에 없지 않냐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박수익 기자 si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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