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위기설 日本열도<2> '무너지는 사무라이주식회사'

"면목이 없습니다. 자금조달이 어려워 회생의 길을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3일 파산한 일본 기업금융업체 SFCG의 오시마 겐신(大島健伸) 회장은 기자 회견장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에 이은 리먼 브라더스발 금융위기는 그러잖아도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기업들에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지난 한 해 동안 일본에서 파산한 기업 수는 1만2681건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았으며 이들 파산기업의 부채총액은 11조9113억200만엔(약 189조1700억원)이었다고 정보제공업체 데이코쿠데이터뱅크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이 가운데 리먼이 파산 보호를 신청한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파산한 기업 수는 무려 4510건에 달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덮은 침체의 그림자는 거치기는커녕 내수 및 수출 부진, 엔화 강세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들의 숨통을 끊임없이 조여왔다.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대기업 하나가 파산하면 그와 생계를 같이해 오던 기업들까지 줄줄이 파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흐름을 타고 올해 들어서도 1월에만 1156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이들 기업의 부채총액은 8643억9800만엔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조에 불과하다. 3월 결산이 대부분인 일본은 상장기업 중 1569개사가 3월 결산이다. 이 가운데 14% 정도가 올해 적자를 기록했을 것으로 전망, 결산 이후 파산기업이 얼마에 달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다. 일본의 3월 위기설이 주목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일본의 산업을 이끌어온 자동차업계의 실적 악화의 파장은 과히 상상을 불허한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2월 16일자)는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이제부터라고 경고했다.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사상 처음 영업적자를 전망한 도요타를 비롯해 닛산·혼다 등 대기업들은 재고조정을 위해 1~3월까지는 감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완성차 메이커 밑에 1차 부품메이커, 그 아래에 2차·3차 등 협력업체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이들 기업들은 거래에서 어음을 주고받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왔는데 어음을 받은 이들 부품메이커는 3개월 후에나 현금을 손에 쥐게 된다. 바뀌 말하면 이들 기업에는 4~6월에나 자금이 돌게 되는데 그 동안을 견뎌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행과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지만 안전과민증으로 코가 석자나 빠진 시중은행들은 좀처럼 돈을 풀지 않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 연동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적게는 2000억달러에서 많게는 1조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결산기 진입에 따른 자금경색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경기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상 도요타와 같은 완성차 메이커들의 사정도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와 함께 '도요타은행'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금고를 자랑하던 도요타마저 회사채 시장을 통해 2000억엔을 조달하겠다고 나서는 형국에 열악한 중소부품업체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은행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는 것. 자금조달 실패로 파산한 기업이 가장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신용평가사 리스크몬스터의 미키 마사시(三木眞志) 대리는 "오는 3월 31일 회계연도말을 맞은 기업들이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금융기관들의 대출 기피현상이 급증하고 있어 2월 이후부터는 파산기업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스크몬스터가 12개월 후 파산 가능성이 있는 기업 수를 조사한 결과, 2008년말 현재 3만6141개사로 2년 전에 비해 무려 64.8%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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